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홈 > 시 백과 > 시인의 시
시인의 시
 
* 특정 종교나 정치.사상, 이념에 치우친 작품과 다수 회원이 삭제를 요청하는 글은 양해없이 삭제되거나 개인게시판으로 옮겨집니다.
* 저자난에는 이름만 사용해야 하며, 별명이나 아호 등을 사용해 등록자 이름과 저자(시인)의 이름이 달라지면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 모두를 위하여 한 번에 많은 작품을 연속해서 올리는 것은 지양하시길 부탁드립니다.
* 목록의 등록자 이름에 마우스를 놓고 클릭하시면 해당 등록자가 올린 작품을 한번에 조회할 수 있습니다. 
* 검색시에는 리스트 하단 <다음검색>버튼으로 나머지 검색 결과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hanwori 1 8653
저자 : 고은-     시집명 : 문의 마을에 가서
출판(발표)연도 : 1974     출판사 : 민음사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신성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달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빈부에 젖은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끼고 서서 참으면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다 참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지난 여름의 부용꽃인 듯
준엄한 정의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나면 우리 모두 다 덮이겠느냐.


* 문의 마을 : 충북 청원군 대청 호반(湖畔)의 마을
1 Comments
가을 2006.04.01 14:30  
흰눈으로 뒤덮인 시골의 한 마을을 그려 본다. 삶에 지쳐서 헤매고 있는 사람에게 그 마을에 들어서는 길은 적막함을 안겨주고 있다. 나와 반겨줄 아무도 없이 추위에 떨며 다다른 마을은 조용히 잠들어 있고 개 한마리 짖지 않는다. 조용히 눈 내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 들어 바라본 저 건너편 산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와 있다. 이 고요함과 적막함은 삶의 고달픔을 잊게 해 준다.
 눈이 내리면 눈사람을 만들고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던 유년 시절의 설레임은 이제 사라졌으며, 눈에 뒤덮인 마을은 삶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사람에게는 고독한 사색의 시간으로만 다가선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던 유년 시절의 그렇게 정다웠던 마을길이 이제는 외면을 하고 추운 산맥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경우로 눈이 내려 죽은 듯이 고요한 마을을 덮는다. 하지만 마을에는 사람들이 계속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다만 문을 걸어 잠그고 조용히 따뜻한 아랫목에 등을 덥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그네는 마을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눈의 존재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도 그렇게 쉽게 분간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있다.
 문의 마을에 가서 눈을 보았고 삶을 깨닫게 되었고 죽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죽음은 낯설지도 않다. 그러기에 시인은 `죽음이 삶을 껴안은 것'을 투시하게 되었다. [해설: 조남현]
제목 저자(시인)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