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사터의 저녁
이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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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5 15:14
저자 : 이숙희
시집명 : 옥수수밭 옆집
출판(발표)연도 : 2015
출판사 : 시와 소금
단속사터의 저녁/ 이숙희
리어카에 거름을 실어내고 있는 아내여.
당신도 저 탑을 끌어안고
당신 설움에 겨워 울어 볼 여유가 있었는가
당신이 일으켜 세워 겨우 나와 앉은 마루 끝에
봄기운도 차갑게만 느껴져
한 손을 연신 주무르고 있으면
당신은 머리 수건을 풀어
옷을 툭툭 털며 방안으로 들어가
약봉지를 꺼내 오겠지
뒤꼍에 서 있는 매화나무에
내 목숨의 접붙이기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당신은
마당 앞에 나란히 당간지주를 바라보고 있는
금술 좋은 탑으로 백년해로하기를 바라지만
빈 절터에 기둥 낮게 세워
뼈마디 녹아나게 일하던 좋은 시절은
그래도 다 누리고 가는 것 같구료
밭고랑 따라 봄 씨앗을 뿌리고 돌아오는 아내여.
내일 아침은 동쪽 탑에서 서쪽 탑으로
천천히 나를 걸어보게 해 주오.
내 탑 속으로 들어 갈 때
단속사터 낮은 지붕 위에
살아 있는 솔거를 보여 주리라.
리어카에 거름을 실어내고 있는 아내여.
당신도 저 탑을 끌어안고
당신 설움에 겨워 울어 볼 여유가 있었는가
당신이 일으켜 세워 겨우 나와 앉은 마루 끝에
봄기운도 차갑게만 느껴져
한 손을 연신 주무르고 있으면
당신은 머리 수건을 풀어
옷을 툭툭 털며 방안으로 들어가
약봉지를 꺼내 오겠지
뒤꼍에 서 있는 매화나무에
내 목숨의 접붙이기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당신은
마당 앞에 나란히 당간지주를 바라보고 있는
금술 좋은 탑으로 백년해로하기를 바라지만
빈 절터에 기둥 낮게 세워
뼈마디 녹아나게 일하던 좋은 시절은
그래도 다 누리고 가는 것 같구료
밭고랑 따라 봄 씨앗을 뿌리고 돌아오는 아내여.
내일 아침은 동쪽 탑에서 서쪽 탑으로
천천히 나를 걸어보게 해 주오.
내 탑 속으로 들어 갈 때
단속사터 낮은 지붕 위에
살아 있는 솔거를 보여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