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맞는 소녀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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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맞는 소녀의 기도

오문경 0 1228
저자 : 오문경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2016     출판사 :
눈 맞는 소녀의 기도

                                                    오문경





눈에 눈을 가리고

길에 길이 묻혀버린

서울 종로 주한 일본 대사관 앞

흰 눈이 날린다

단발머리 소녀의 머리 위에도

소복소복 눈이 쌓인다

여태, 아물지 않은 상처로 앉아있는 소녀

포탄 소리 멈추었어도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은

모로 누운 시간 속,

흰 눈 속을 건너온 

한 소녀가 이미 백발이 되어버린

단발머리 소녀의 목에

손수 짠 털목도리를 감아준다

마치 상처 난 목을 감싸 안듯

광풍의 군홧발 아래,

짓밟히며 이리저리 휘둘리며

한 장 바람에 찢긴 영혼의 목젖이 흐느낀다

아, 한숨 소리조차 한번 내질러 보지 못한

무너진 억장
 
덩그러니 빈 의자

긴 그림자 함께 드리우고 눈을 맞는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새 한 마리
 
소녀의 어깨 위에 앉아 고요히 눈을 읽는다

진실을 덮으려는 눈은 이내 녹고 만다며

부릅뜬 눈만이 햇살처럼 살아서

이 땅의 평화를 빛낸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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