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에서(고향 하씨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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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에서(고향 하씨 집)

rain 0 1231
저자 : 정은정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폐가에서(고향 하씨 집) 


                                    정 은 정


대문을 들어서니 컴컴한 무게가 먼저
댓돌을 내려와 반긴다.

마당가에 분주했던 인기척은
다 어디로 갔을까
곡기를 끊은지 오래된 늙은 무쇠솥이
피처럼 붉다.

한 때는 기왓집 그림자에 튼실했던
주인장의 성깔은 누가 잠재웠을까
잡풀 무성한 마당에 굽은 햇살이
머물다 가는걸 알기나 할까

빛살 고운 하늘도 비켜가는 것일까
시간의 완강한 고집에
감각은 모두 허물어지고
고요한 내 과녁이
거밋줄 무성한 툇마루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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