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연습
김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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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9 06:28
저자 : 김윤자
시집명 : 별 하나 꽃불 피우다
출판(발표)연도 : 2000년
출판사 : 조선문학사
익어가는 연습
김윤자
처음엔 애처로웠지. 비에 젖어 떠는 나무가
어미 되어 품어주고 싶은 아가, 나무야
잎사귀를 꼬옥 오므려봐. 아님 빗줄기를 떠밀어봐
외다리로 버티어 서서 따닥따닥 볼을 치는 비를
배꽃 하늘거리듯 웃으며 맞고 서 있어. 나무는
자꾸 가 보았어.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거기 배꽃 하늘거리듯 서 있는 나무를 믿고
차츰 내가 아가 되어 나무 곁으로 살살 파고들다가
나무 밑의 고요한 흙을 보게 된 거야
침묵으로 나무를 품고 있는
검붉도록 사람들 발길에 채이면서도
다지고 또 다진 몸으로 나무를 받들고 있는
나무야, 흙에 꽂히려는 장대비 촉살을
그렇게 네 머리로 받아치고 있었구나
너를 부축이는 흙, 흙을 위해서
비 오는 날 산에 가면
맑은 날 산에 가는 것보다 더 익어서 돌아온다.
익어가는 연습-시집 <별 하나 꽃불 피우다>
김윤자
처음엔 애처로웠지. 비에 젖어 떠는 나무가
어미 되어 품어주고 싶은 아가, 나무야
잎사귀를 꼬옥 오므려봐. 아님 빗줄기를 떠밀어봐
외다리로 버티어 서서 따닥따닥 볼을 치는 비를
배꽃 하늘거리듯 웃으며 맞고 서 있어. 나무는
자꾸 가 보았어.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거기 배꽃 하늘거리듯 서 있는 나무를 믿고
차츰 내가 아가 되어 나무 곁으로 살살 파고들다가
나무 밑의 고요한 흙을 보게 된 거야
침묵으로 나무를 품고 있는
검붉도록 사람들 발길에 채이면서도
다지고 또 다진 몸으로 나무를 받들고 있는
나무야, 흙에 꽂히려는 장대비 촉살을
그렇게 네 머리로 받아치고 있었구나
너를 부축이는 흙, 흙을 위해서
비 오는 날 산에 가면
맑은 날 산에 가는 것보다 더 익어서 돌아온다.
익어가는 연습-시집 <별 하나 꽃불 피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