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옆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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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옆을 지나며

이향아 0 428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온유에게
출판(발표)연도 : 2014     출판사 : 시와시학
은행나무 옆을 지나며/이향아



옷 빛깔 괜찮은가, 모양새는 어떤가

거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린다

지금은 가을이고, 더군다나

은행나무 곁을 지나가야 하니까



공작이 진저리치며 꼬리를 펼칠 때처럼

나 지나갈 때를 기다려

비밀한 절정을 토설할 것처럼

일제히 술렁이는 수만 개의 잎사귀



그중 어떤 것은 폭삭 늙어서

병이 들었나, 다가가 보았다

아, 암나무구나

치다꺼리할 새끼들만 매달렸구나

알맹이는 하나씩 내보내고

빈껍데기만 남아

지레 늙지 않고서야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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