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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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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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1

관리자 1 6444
저자 : 기형도     시집명 : 입 속의 검은 잎
출판(발표)연도 : 1989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소리 1

                                기형도


아주 작았지만 무슨 소리가 들린 듯도 하여 내가 무심코 커튼을 걷었을 때, 맞은편 3층 건물의 어느 창문이 열리고 하얀 손목이 하나 튀어나와 시들은 푸른 꽃 서너 송이를 거리로 집어던지는 것이 보였다. 이파리들은 잠시 공중에 떠있어나볼까 하는 듯 나풀거리다가 제각기 다른 속도로 아래를 향해 천천히 떨어져내렸다. 나는 테이블로 돌아와 묵은 신문들을 뒤적였다. 그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희미한 빛깔이 조금 고여 있었다. 스위치를 내릴까 하고 팔목시계를 보았을 때 바늘은 이미 멈춰 있었다. 나는 헛일삼아 바늘을 하루만큼 뒤로 돌렸다. '어디로 가시렵니까' 내가 대답을 들을 필요조차 없다는 듯한 말투로 물었을 때 그는 소란하게 웃었다. '그냥 거리로요' 출입구 쪽 계단에서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이블 위에, 명함꽃이, 만년필, 재떨이 등 모든 형체를 갖춘 것들마다 제각기 엷은 그늘이 바싹 붙어 있는 게 보였고 무심결 나는 의자 뒤로 고개를 꺾었다. 아주 작았지만 이번에도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다시 창가로 다가갔을 때 늘상 보아왔던 차갑고 축축한 바람이 거리의 아주 작은 빈곳까지 들추며 지나갔다. '빈틈이 없는 사물들은 어디 있을려구요' 맞은 편 옆 건물 2층 창문 밖으로 길게 삐져나온 더러운 분홍빛 커튼이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 섭섭하다는 듯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버려두세요. 뭐든지 시작하고 있다는 것은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는 깜빡 잊었다는 듯이 캐비닛 속에서 장갑을 꺼내면서 덧붙였다. '아니, 그냥 움직이고 있는 것일지라두 말이죠,' 먹다 버린 굳은 빵쪼가리가 엄숙한 표정으로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듯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어둠과 거리는 늘상 보던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천장에 대고 조그맣게 말했다. '나는 압핀처럼 꽂혀 있답니다' 그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희미한 빛깔이 조금 고여 있었다. '아무도 없을 때는 발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리는 법이죠' 스위치를 내릴 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내 가슴 알 수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익숙한 그 소리는 분명히 내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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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2007.06.15 10:18  
먹다 버린 굳은 빵쪼가리가 엄숙한 표정으로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듯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어둠과 거리는 늘상 보던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천정에 대고 조그맣게 말했다. '나는 압핀처럼 꽂혀 있답니다' 그가 조금전까지 서있던 자리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희미한 빛깔이 조금 고여있었다. '아무도 없을 때는 발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리는 법이죠' 스위치를 내릴 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내 가슴 알 수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익숙한 그 소리는 분명히 내게 들렸다.



그는 깜빡 잊었다는 듯이 캐비닛 속에서 장갑을 꺼내면서 덧붙였다. '아니, 그냥 움직이고 있는 것일지라두 말이죠,' 먹다 버린 굳은 빵쪼가리가 엄숙한 표정으로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듯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어둠과 거리는 늘상 보던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천장에 대고 조그맣게 말했다. '나는 압핀처럼 꽂혀 있답니다' 그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희미한 빛깔이 조금 고여 있었다. '아무도 없을 때는 발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리는 법이죠' 스위치를 내릴 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내 가슴 알 수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익숙한 그 소리는 분명히 내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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