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서사시)-1 - 신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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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서사시)-1 - 신동엽

이석중 1 15365
저자 : 신동엽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금강(錦江)
신동엽


 1
우리들의 어렸을 적
황토 벗은 고갯마을
할머니 등에 업혀
누님과 난, 곧잘
파랑새 노랠 배웠다.

울타리마다 담쟁이넌출 익어가고
밭머리에 수수모감 보일 때면

어디서라 없이 새 보는 소리가 들린다.

우이여! 훠어이!

쇠방울 소리 뿌리면서
순사의 자전거가 아득한 길을 사라지고
그럴 때면 우리들은 흙토방 아래
가슴 두근거리며
노래 배워주던 그 양품장수 할머닐 기다렸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잘은 몰랐지만 그 무렵
그 노랜 침장이에게 잡혀가는
노래라 했다.

지금, 이름은 달라졌지만
정오가 되면 그 하늘 아래도 오포가 울리었다.
 일 많이 한 사람 밥 많이 먹고
 일하지 않은 사람 밥 먹지 마라,
 오우우……하고.

질앗티
콩이삭 벼이삭 줍다 보면 하늘을
비행기 편대가 날아가고
그때마다 엄마는 그늘진 얼굴로
내 손 꼭 쥐며
밭두덕길 재촉했지.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그 가슴 두근거리는 큰 역사를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그땐
그 오포 부는 하늘 아래 더러 살고 있었단다.

앞마을 뒷동산 해만 뜨면
철없는 강아지처럼 뛰어 다니는 기억 속에
그래서 그분들은 이따금
이야기의 씨를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리.

그 이야기의 씨들은
떡잎이 솟고 가지가 갈라져
어느 가을 무성하게 꽃피리라.

그 일을 그분들은 예감했던 걸까.
그래서 눈보라치는 동짓달
콩강개 묻힌 아랫목에서
숨막히는 三伏 순이 엄마 목메었던
그 정자나무 근처에서 부채로 매밋소리
날리며 조심조심 이야기했던 걸까.

배꼽 내놓고
아랫배 긁는
그 코흘리개 꼬마들에게.

2
우리들은 하늘을 봤다
1960년 4월
역사(歷史)를 짓눌던, 검은 구름장을 찢고
영원(永遠)의 얼굴을 보았다.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하늘 물 한아름 떠다,
1919년 우리는
우리 얼굴 닦아 놓았다.

1894년쯤엔,
돌에도 나무등걸에도
당신의 얼굴은 전체가 하늘이었다.

하늘,
잠깐 빛났던 당신은 금새 가리워졌지만
꽃들은 해마다
강산(江山)을 채웠다.

태양(太陽)과 추수(秋收)와 연애(戀愛)와 노동(勞動).

동해(東海),
원색(原色)의 모래밭
사기 굽던 천축(天竺) 뒷길
방학이면 등산모 쓰고
절름거리며 찾아나섰다.

없었다.
바깥 세상엔, 접시도 살점도
바깥 세상엔
없었다.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영원(永遠)의 하늘,
끝나지 않는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제 1장

반도(반도)는,
가는 곳마다
가뭄과 굶주림,
땅이 갈라지고 서당(書堂)이 금갔다.
하늘과 땅을
후비는 흙먼지.

1862년
전봉준이 여덟 살 되던 해
경상도 진주(晋州)에서
큰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세금,
이불채 부엌 세간 초가집
다 팔아도 감당할 수 없는
세미(稅米), 군포(軍布),
마을 사람들은 지리산 속 들어가
화전민(火田民) 됐지.

관리들은 버릇처럼 또
도망간 사람들 몫까지
이징(里徵), 족징(族徵)했다.
총칼 앞세운 진주병사(晋州兵使)
백낙신(白樂莘).

3천의
농민들이 대창 들고 관청에 몰려와
병사 내쫓고 아전 죽이고
노비 문서 불살라버렸다.

정부는 병사(兵使)를 잡아
더 좋은 기름 고을 벼슬을 주고.
다음해, 윷놀이가 한창인 정월 대보름날
진주 농민 마흔 일곱 명을 묶어
교수했다.

1871년
경상도 문경(聞慶)에서
농민군 2천 명이
동학 교도 이필의 지휘로
관아를 습격, 죄수들을 석방하고
노비 문서 불사르고 창고를 때려부숴
쌀을 꺼내다가 농민에게 나눠줬다.

황해도,
평안도,
이곳 저곳에서
농민반란은 터졌다.
마치 연주창처럼
걷잡을 수 없이, 팔도강산 이곳저곳에서
잇달아 터졌다.


 제 2장

짚신 신고
수운(水雲)은, 3천리
걸었다.

1824년
경상도 땅에서 나
열여섯 때 부모 여의고
떠난 고향.

수도(修道) 길.
터지는 입술
갈라지는 발바닥
헤어진 무릎.

20년을 걸으면서,
수운은 보았다.
팔도강산 딩군 굶주림
학대,
질병,
양반에게 소처럼 끌려 다니는 농노(農奴).
학정
뼈만 앙상한 이왕가(李王家)의 석양.

2천년 전
불비 쏟아지는 이스라엘 땅에선
선지자 하나이 나타나
여문 과일 한가운델
왜 못박히었을까.

3천년 전
히말라야 기슭
보리수나무 투명한 잎사귀 그늘 아래에선
너무 일찍 핀
인류화(人類花) 한 송이가
서러워하고 있었다.

1860년 4월 5일
기름 흐르는 신록의 감나무 그늘 아래서
수운은,
하늘을 봤다.
바위 찍은 감격, 영원의
빛나는 하늘.


 제 3장
 
어느 해
여름 금강변을 소요하다
나는 하늘을 봤다.

빛나는 눈동자.
너의 눈은
밤 깊은 얼굴 앞에
빛나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검은 바람은
앞서간 사람들의
쓸쓸한 혼을
갈갈이 찢어
꽃 풀무 치어 오고

파도는,
너의 얼굴 위에
너의 어깨 위에, 그리고 너의 가슴 위에
마냥 쏟아지고 있었다.

너는 말이 없고,
귀가 없고, 봄도 없이
다만 억천만 쏟아지는 폭동을 헤치며
고고히
눈을 뜨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두운 밤
너의 눈은
세기(世紀)의 대합실 속서
빛나고 있었다.

빌딩마다 폭우가
몰아쳐 덜컹거리고
너를 알아보는 사람은
당세에 하나도 없었다.

그 아름다운,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조용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다만 사랑하는
생각하는, 그 눈은
그 밤의 죽음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
자시(子時)다, 새벽이다.
승천(昇天)이다.

어제 발버둥치는
수천 수백만의 아우성을 싣고
강물은
슬프게도 흘러갔고야.

세상에 항거함이 없이,
오히려 세상이
너의 위엄 앞에 항거하려 하도록
빛나는 눈동자

너는 세상을 밟아디디며
포도알 씹듯 세상을 씹으며
뚜벅뚜벅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눈.
너의 그 눈을 볼 수 있는 건
세상에 나온 나의, 오직 하나
지상(至上)의 보람이었다.

그 눈은
나의 생(生)과 함께
내 열매 속에 살아 남았다.

그런 빛을 가지기 위하야
인류는 헤매인 것이다.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몸은 야위었어도
다만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눈물겨운 역사마다 삼켜 견디고
언젠가 또다시
물결 속 잠기게 될 것을
뻔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의
세속된 표정을 개운히 떨어버린,
승화(昇華)된 높은 의지 가운데
빛나고 있는, 눈
산정(山頂)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정신의

깊게. 높게.
땅 속서 스며나오듯한
말 없는 그 눈빛.

이승을 담아버린
그리고 이승을 뚫어버린
오, 인간 정신 미(美)의
지고(至高)한 빛.

 제 4장

수운은
왕명으로 체포되어
대구 감영 속 감금되었다가,
1864년 3월 10일
대구 노들벌에서 순교했다.

해월이 옥리를 매수하여
수운을 탈옥시키려고,
옥 안에 들어섰을 때, 수운은
담뱃대 하나 해월에게 쥐어주며
빨리 돌아가라 할 뿐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주막집,
등잔불 아래 마주 앉은
문경접주 이필, 제 2세 동학교주 해월,

선사에게서 받은 담뱃대를 쪼개니
종이 심지.
종이 심지를 펴보니
깨알 같은 붓글씨,

 그대 마음이 곧 내 마음이어라
 우리의 죽음은 오히려 지붕 떠받드는
 기둥으로 영원한 것.

 나는 고이 하늘의 뜻에 따르려노니
 그대는 내일 위해 어서
 먼 땅으로 피하라.
 
&lt;燈明水上 無嬚隙
 柱似枯形 力有餘
 吾는 順受天命하니
 汝는 高飛遠走하라 &gt;


들에선 농부들이
거름을 퍼내고
거름 무덤에선
아침 햇살 속
흰 김이 무럭 피었다.

장꾼으로 변장한
해월,
이필, 그리고 몇 사람은
상주의 들을 거쳐
문경 새재 아흔아홉 굽이 휘어
태백산을 찾았지.

왕실에
선 천냥의 현상금 걸어
해월(海月)을 수배하고.

일찍이 수운은
두 권의 저서를 남겼다.

동경대전(東京大典),
용담유사(龍潭遺詞),

사람은 한울님이니라
노비도 장사꾼도 천민도
사람은 한울님이니라

우리는 마음 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사니라
우리의 내부에 한울님이 살아계시니라
우리의 밖에 있을 때 한울님은 바람,
우리는 각자 스스로 한울님을 깨달을 뿐,
아무에게도 옮기지 못하니라.
모든 중생이여, 한울님 섬기듯 이웃 사람을 섬길지니라.

수운은
집에 있는노비 두 사람을
해방시키어
하나는 며느리
하나는 양딸,

가지고 있던
금싸래기땅 열두 마지기
땅없는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었다.

제 5장

진달래,
지금도 파면, 백제 때 기왓장
나오는 부여 군수리
농사꾼의 딸이 살고 있었다.
송화(松花)가루 따러
금성산 올랐다
내려오는 길
바위 사이 피어 있는 진달래
한 송이 꺾어다가
좋아하는 사내 병석 머리맡
생화(生化)해 줬지.

다음 담 날
그녀는 진달래,
화병에서 뽑아, 다시
금성산 기슭
양지쪽에 곱게 묻어줬다.

백제,
천오백년, 별로
오랜 세월이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듯
몇 번 안가서
백제는
우리 엊그제, 그끄제에
있다.

진달래,
부소산 낙화암
이끼 묻은 바위서리 핀
너의 얼굴에서
사랑을 읽었다.
숨결을 들었다.
손길을 만졌다.
어제 진
백제 때 꽃구름
비단 치마폭 끄을던
그 봄하늘의 바람 소리여.

마한 땅,
부리달이라는 사나이가
우는 아들 다섯 살배기를 맴매 했다.
귓가에 희미한 먹이 졌다.

귓가의 먹을 본 동네 할아버지
아소는, 어린이의 손을 잡고
흙길에 앉아서 울었다.
마을 앞엔 정자나무가 있었고
정자 나무 옆엔 두렛마당,

동네 할아버지 아소는 부리달을
두렛마당에 불러다 놓았다.

흙바닥에 나무개피로 조그만
동그라미 그어놓고 부리달로 하여금
사흘 밤낮을, 동그라미 속에 서 있게
벌줬다.

아소도 그 옆 또하나의
조그만 동그라미 그어놓고
사흘 밤낮을 서서, 밤이슬 맞으면서
함께 울었다.


 제 6장

우리들에게도
생활의 시대는 있었다.

백제의 달밤이 지나갔다,
고구려의 치맛자락이 지나갔다,

왕은,
백성들의 가슴에 단
꽃.

군대는,
백성의 고용한
문지기.

앞마을 뒷마을은
한 식구,
두레로 노동을 교환하고
쌀과 떡, 무명과 꽃밭
아침 저녁 나누었다.

가을이면 영고, 무천,
겨울이면 씨름, 윷놀이,
오, 지금도 살아 있는 그 흥겨운
농악이여.

시집가고 싶을 때
들국화 꽂고 꽃가마
장가가고 싶을 때
정히 쓴 이슬마당에서
맨발로 아가씨를 맞았다.

아들을 낳으면
온 마을의 경사
딸을 낳으면
이웃마을까지의 기쁨,

서로, 자리를 지켜 피어나는
꽃밭처럼,
햇빛과 바람 양껏 마시고
고실고실한 쌀밥처럼
마을들은 자라났다.

지주도 없었고,
관리도, 은행주도,
특권층도 없었다.

반도는,
평등한 노동과 평등한 분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그 위에 백성들의
축제가 자라났다.

늙으면 마을 사람들에 싸여
웃으며 눈감고
양지바른 뒷동산에 누워선, 후손들에게
이야기를 남겼다.

반도는
평화한 두레와 평등한 분배의
무정부 마을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그 위에 청춘들의
축제가 자라났다.
우리들에게도 생활의 시대는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살림을장식하기 위해 백성들 가슴에
달았던 꽃이, 백성들 머리 위 기어 올라와,
쇠항아리처럼 커져서 백성 덮누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산짐승, 유한(有閑)약탈자
쫓기 위해 백성들 문밖 세워뒀던 문지기들이,
안방 기어들어와 상전 노릇 하기
시작한 것은,

이조 5백년의
왕족,
그건 중앙에 도사리고 있는
큰 마리낙지.
그 큰 마리낙지 주위에
수십 수백의 새끼 낙지들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정승배, 대감마님, 양반나리, 또 무엇

지방에 오면 말거머리들이
요소요소에 웅거하고 있었다
관찰사, 현감, 병사, 목사,

마을로, 장으로
꾸물거리고 다니는 건 빈대,
봉세관(捧稅官), 균전사(均田使), 전운사(轉運使), 아전, 이속, 관세위원(官稅委員)
그들도 벼슬은 벼슬이었다.

벼슬자리란 공으로 들어오지
않는 법,
밑천을 들였으면
밑천을 뽑아야,
그리고 지금이나
예나, 부지런히 상납해야
모가지가 안전한 법,
그래서, 큰 마리낙지 주위엔
일흔 마리의 새끼 낙지가,
일흔 마리의 새끼낙지 산하엔
칠백 마리의 말거머리가,

칠백 마리의 말거머리 휘하엔
만 마리의 빈대 새끼들이,
아래로부터, 옆으로부터,
이를 드러내놓고 농민 피를 빨아

열심히, 상부로 상부로
올려바쳤다.
큰 마리낙지는
그럼 혼자서 살쪘나?

오늘, 우리들 책 끼고
출근 버스 기다리는 독립문 근처
상전국 사신의 숙소 모화관이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무슨 호텔, 아니면 무슨 대사관,
해마다 왕실은
3십3만 냥의 금은보활,
청나라 황실에 상납.
그리고 3십 7만냥의 돈 들여
상전국 사신, 술과 고기와 계집으로 접대했다.

&lt; 혹, 노예들에 의해
우리 왕실 밀려나게 됐을 때
즉각 귀국 군대로
도와주옵소서 &gt;

신라왕실이
백제, 고구려 칠 때
당나라 군사를 모셔왔지.

옛날 사람 욕할 건 없다.

우리들은 끄떡하면 외세를
자랑처럼 모시고 들어오지.
팔·일오 후, 우리의 땅은
디딜 곳 하나 없이
지렁이 문자로 가득하다.
모화관에서 개성 사이의 행길에 끌려나와
청나라 깃발 흔들던 눈먼 조상들처럼,

오늘은 또, 화창한 코스모스 길
아스팔트가에 몰려나와,
불쌍한 장님들은, 대중도 없이 서양깃발만
흔들어댄다.

허나 다녀가는 높은 오만들이여
오해 마시라,
그대들이 만져본 건 역사의 껍데기,

알맹이는 여기
언제나 말없이 흐르는 금강처럼
도시와 농촌 깊숙한 그늘에서
우리의 노래 우리끼리 부르며
누워 있었니라.

누구였던가, 무엇에 당선만 되면
다음날 당장 미국에 건너가
더 많은 동냥, 얻어올 수 있다고 장담했던
정치 거지는,

내 진실로 묻노니 그대들이 구걸해 온
동냥돈이, 단 한번만이라도 농민들의
밥사발에, 쌀밥으로 담겨져 본 적이 있었는가.

후진국의 땅은 포도주,
포도주는 썩어야 맛이 날까.

빠다와 째즈와 딸라와
양키이즘으로, 우리의 땅은 썩혀졌을까.

원조물자, 딸라는 효모,
발효한 항아리에서 포도주 빼가기에
바쁜 넥타이 맨 장사꾼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방마다에서 한국의 토산물
흥정되고, 자본의 앞잡이들은
한국지도 위 등불 밝혀 놓고
분주히 주판알 튀긴다.

자본이 벨을 누르면
중앙청 정승 대감들이
맨발로 달려와
머리 조아리고,
다음날 그들
은행실 벼슬아치들은
호남평야 원주민의 쌀값을
대폭 인하

자본실이 가지고 들어온
설탕값을 스물세 곱으로 올린다.

딸라의 냄새란 좋은 것,
미나리처럼 쭉쭉 뻗은
코라아산 여대생들
라이프지 끼고 그 근처 와
온종일 빙빙 돌지.

눈먼
백성들이여,
가도 가도
끝이 없을
눈먼 행렬이여,

오늘의 하늘 아래
반도에 도사리고 있는
큰 마리낙지, 작은 마리낙지,
새끼 거머리들이여.

눈도 코도 없이
벌거벗고 대낮 거리에 나온 화냥년들과 놀아나는
부잣나라 지키는 문지기들이여.

갈라진 조국.
강요된 분단선.
우리끼리 익고 싶은 밥에
누군가 쇠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구나.
너와 나를 반목케 하고
개별적으로 뜯어가기 위해
누군가가 우리의 세상에
쇠가루 뿌려놓은 것 같구나.

4월달, 우리들, 밥은
익었었는데
누군가가 쇳가루 뿌려놓은 것 같구나.

연인이여, 너와 나의 쌀밥에
누군가 쇠가루 뿌려놓은 것 같구나.


 제 7 장

여행을 떠나듯
우리들은 인생을 떠난다.
이미 끝난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지금,
이 시간의 물결 위
잠 못들어
뒤채이고 있는
병 앓고 있는 사람들의
그 아픔만이
절대(絶大)한 거.

굶주려본 사람은 알리라.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철들면서부터
그 지루한
30년, 50년을
굶주려본 사람은
알리라,

굶주린 아들 딸애들의
그, 흰 죽사발 같은
눈동자를,
죄지은 사람처럼
기껏 속으로나 눈물 흘리며
바라본 적이 있은
사람은 알리라.

뼈를,
깎아 먹일 수 있다면
천 개의 뼈라도 깎아 먹여주고
싶은,
그 아픔을
맛본 사람은 알리라.

이미 끝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어라,
이미 죽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어라.


 제 8 장

하늬는
한쪽 발을 조금
절었다.

세 살 때
김진사가 마당에
내던졌었다.
대문 여닫는 소리
박쪽 굴러다니는 소리
검불이 이리저리 날리고

먼 마을에서
대감집 닭이 세월도 없이
길게 울 때,

이런 땐
틀림없이 나무뿌리
소나무껍질, 일찍 나온 냉이
쑥뿌리 찾는 굶주린 행렬들이
산과 들판
시래기처럼 하이얗게
널리고,

누구네집 재를 내는
머슴은
대왕펄 보리밭에서
부옇게 재 뒤집어쓰고
재채기에 쳇머리 흔들고 있으리라.

그렇지
또 있다.
갈대꽃 날리는 강언덕
옷보자기 낀 아낙네가
치맛자락 날리며,
지금도 나룻배
기다리고 있겠지,
맞바우.

하늬는,
김진사네집 머슴
돌쇠가 주워다 기르고 있었다.

세 살짜리는
날마다
배가 고팠다.
아랫목에 묻어 둔
콩강개도 없이.

그날은
김진사집에
서울 사는 정대감님이 오시는 날.

동네 노소부녀(老少婦女) 다 동원해서
한 달 전부터 길을 닦고
환영 준비에 바빴다.
마을 사람들은 돈 있는 사람의
종이었으니까.

배가 고픈 하늬는
엎디어서 울었다
코를 땅에 박고
지치도록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연놈들이 말 잘 안듣는다고
노발대발, 치알치는 유첨지를 호령하던
김진사가 신발한 채 행랑방에 뛰어들어
우는 아이 마당 밖으로 집어던져
돼지우리 속 떨어졌다.

삼신 할머니가 받았음일까,
발목 복숭아뼈가 조금 삐져나왔을 뿐,
우는 소리가 뚝 그치고
한손으로 머리 긁으며
일어나 앉았다.

그날부터 하늬는
부소산 너머 뒷개 사는
조할머니가 앞치마에 꾸려다
길렀다.

조할머니의 남편은 광해군 때
애매한 역모죄로 귀양가 죽었다.
더없이 선량한 선비, 눈이 너무
맑아서 죄지을 줄 모르는 선비는
돼지죽 속 진주처럼 밀려나는 법일까.

하늬는 열두살 나던 해
조할머니를 잃었다.
아홉 해 동안 조할머니는
서기 어린 하늬의 뇌 속에
한서(漢書), 불경(佛經), 수십 권을 읽혔다.

하늬의 아버지에 대해선
아무도 몰랐다.
비가 오는 날, 돌쇠 앞에
흠씬 젖은 여인이 나타나
무명보자기에 싼 걸
맡기고 갔다.

 『이 아이 조상은 묻지 말아
주세요. 제가 돌아올 때까지만
보살펴 주세요.
은공 잊지 않겠어요,
혹 못돌아 오더라도.
이름은 하늬에요,
성은 신.』

그녀는, 고개를 돌린 채
무명보자기와, 몇 잎의
동전 방바닥에 놓고
비 속을 사라졌다.

아기의 손엔
콩알만한, 노리개 은방울이
쥐어져 있었다.

하늬는,
철들면서부터 돌쇠를
아버지처럼 모셨다.
그의 몸에서, 콩알만한
그 수수께끼 같은 노리개 은방울이 떠날 날 없었듯.



 제 9장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 속의 구름,

아침 저녁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
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아모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불쌍할 뿐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석양,
읍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고갯길에서
하늬는 기다리고 있었다.

향나무가 두 그루 미루나무가 하나
무덤이 밭 가운데 있었다.

스물다섯에 만난 여자,
그리고 일년을, 깨알 쏟아지듯
다정하게 살림한 여자.
하늬는 괴로웠다.

벌거벗었던 마누라의
붉은 육체,
몸부림치고 있었다.
흐느끼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늙어빠진
김진사와,

그러면 그 김진사의 꼬임으로?
천둥번개 우르렁거리고
홍수 같은 소나기 밤새
퍼붓던 어느날 밤
그녀는, 하늬의 품 속에서
무서운 이야길
고백했었다.

그리고 자길 죽여 달라고
가슴 쥐어뜯으며
통곡했었다.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인가,
눈을 뜨지 못한 짐승,
그렇다,
우리 주위엔 얼마나 많은
눈 뜨지 못한 짐승들이
사람 탈을 쓰고
밀려가고 있는가.

허나 어찌 할 건가
우리는 또 무언가.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저 여자만의 문제로
끝나는 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 속서 저러고 싶어
꿈틀거리고 있을건가.

그렇다면,
봇물을 막는 뚝이여
너는 죄인.
한 생명을 독점하려는
소유욕이여
네가 죄인.

터놓아라. 강물.
제멋에 이리저리
흘러다니도록,
터놓아라. 강물.
하늬는 기다렸다.
두 남녀의,
그 목줄기에 솟았던
굵은 심줄의 가련함을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늬는 하늘을 봤다
영원의 하늘,
내것도,
네것도 없이,
거기 영원의 하늘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늬의 발밑엔,
꿈틀거리던
두 마리의 버러지.
그렇다,
불쌍하달 밖에 없었다
자기의 생 영위키 위해
삐걱삐걱 땀 흘리며
하루를 숨쉬던 허리.

내것
네것
없는 하늘 소리가
무한에서 와서
무한으로 흘러간다.

어디로 가는
바람인지, 수수잎을
흔들면서 한 무더기가
지나간다.

오, 아름다운 노을
저 노을을 볼 때 우리는 이 세상,
어떻게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오, 아름다운 하늘
저 노을을 볼 때 어떻게 이 세상,
서러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늬는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같이 투명한 마음으로.
한 덩이의 하루살이떼가
원무(圓舞)하며 풀밭으로 쏟아진다.

목화밭과 수수밭 사잇길에서
그녀는 나타났다.
조기를 한 꾸러미 들고 있었다.

이쪽을 보았다
금강의 낙조 속에서
보았다.

불빛이 튀는 걸까
먼빛으로도 그건
탄력있는 징그러움이었다.

웬일일까,
그녀는 돌아서서 뛰었다
조기 꾸러미를 논배미 던지며
달렸다.

살 맞은 뱀.
어디로 숨는 걸까,
무얼 보았단 말인가
절벽.
먹구름,
고향,
돌, 절벽.

그녀가 솔밭 사이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뛰기 시작했다.

콩밭이 지나갔다,
황토 흙, 뫼, 대추나무,
우물바닥이 지나갔다.
척추 퍼붓는 땀의 비,
목화밭, 언덕,
소나무 숲, 개울,

강이 보였다,
흰 물구비,
언덕 위 바위,
바위의 싸늘한 감촉,

두 짝의 흰
고무신을 보았다.

물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하늘엔 이름모를 새가
날고 있었다,

강 건너 언덕에선
황소가 풀을 뜯고.



 제 10장

가을이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두 송이
열차 속 사귄 손님처럼
속삭이며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북한산 골짝
머루,
도토리, 다래,
개암,
열매 터지는 소리
버섯,
억새, 통통 여문 벌레소리.

하늬는
가을 산을
헤매고 있었다.
허리엔 두 켤레의 짚신
그리고 괴나리봇짐.

수건을 꺼내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런데 웬일일까.

여인,
단풍 물든 자작나무 가지를 헤치며
옷보자기 끼고
산 속에 나타난 궁녀.

맑은 하늘 밑
물건 없는 산 속을
수놓은
하늘거리는 짐승.
땅의 끝에서
땅의 끝으로
피란길 떠나는
행색이었을까.

지친 이마,
쏟아진 어깨,

하늬를 보고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때까치가
머리 위 울었다.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날리는
붉은 단풍잎은
날짐승인가,
전설인가,

금빛 꾀꼬리가
한 쌍
영원의 공간 속을
횡단해 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가을을 열어 놓은
산골짜기에서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바위 붙들고
그녀가
멎어섰다.
한쪽 무릎 접으며
다소곳 앉았다.

산 속에 핀
무지개.
향내가 골짝을 흔들었다.
눈빛이
바위 속 젖어들었다.

보라빛 들구과
한 송일 꺾어들고
하늬는 다가갔다.
바위 위 놓여있는
여인의 손 위
자기 손을 포개 얹었다.

다수운 살결,
여인의 마음은
높게 물결치고 있었을까.

윤기 짙은
검은 머리 위
굽어 든 하늘.

하늬는 여인의
숱많은 머리 다발 속
보라빛 들국활
꽂아 주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입가엔
눈물처럼 스며 밴
미소.

얼마가 지났을까,
억겁쯤 지났을까,

그녀는 눈을 떴다.
미소,
발밑 억새꽃 한 모감
뽑아
공손히 두 팔 드려
남자에게 바쳤다.

하늬는
억새꽃을 받아
입에 물고,
여인의 손목 쥐며
얼굴 들여다 보았다.

흘러가는 강물,
가까운 거리에서
원초스런 눈초리로
일진, 일퇴,
속삭이고 있는
둘의 눈동자.

열려 있는 창문이었다.
자기들의
내실(內室)의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
열려 있는 창문
둘이서, 시간을 거스르며
서정을
두레박질하고 있었다.

사슴이 이따금 찾아와
입술 적시고 가는
숲 속의 호수,

열두 개의 보석을
쪼개고 들어가면,
자리하고 있을
이슬 젖은 선녀의
안마당,

지나간 바람과
내일의 하늘이
사이좋게 드나들고 있을
투명한 하늘,

이야기가
소용 없었다
촉촉히 젖은
둘의 입술,
가늘게 떨리면서
열렸단 멎고
열렸단 말 뿐,
손과 손
마음과 마음
역사와 역사는
얽혀 흐르면서
뼈 없이 녹아,

구석과 구석을 적시고
지상에서 천상을 향하여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해조(諧調)의 음악이 되어

무한한 공간을
흘러가고 있었다.



 제 11장

 『궁에서
도망나오는 길이에요
눈독들이는 그 늙은이들의
입김이 싫어 못 배기겠어요

추석이 지나니 고향 생각도 나고.
아버지 장사지내러 왔었어요,
제 고향은 황해도 해주.

경복궁 개축공사 부역일에
아버지가 끌려 왔었어요.

육십 넘은 아버지.
등짐하다 바위 밑 깔려
객사하셨대요.

한강 가
제 손으로 묻어 드렸어요.
돌아가는 길 어느 노파에 끌려
궁으로 들어갔죠.』

『우물 점이 있군요,
당신의 이마엔.
언제부터 그 하늘의 그늘
생겼는지 기억하세요?』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
선생님 말씀해 주세요,
제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제 성이 도장 인(印)자에요
이름은 진아.』

『이상하군요, 어젯밤 나는
삼청동 객삿집에 묵으면서
꿈을 꿨소.

나라 위 자욱히
안개가 덮여 있더군,
고구려성의 왕관을 주웠어요
휘황찬란한.

금강산에서 내려왔다는
흰 말이 내 앞에 무릎 꿇더군.
그래 신발 대신 왕관을 신었는데
한쪽 발에 신을 신이 없어
걱정하다 잠을 깼소.』

『저도 꿈을 꿨어요
백제땅 금강이래요.

목욕하고 나오다
모래밭에서
사슴의 뿔을 얻었어요.

그 사슴의 뿔이 갑자기
용이 되어 하늘로 꿈틀거리며
오르더군요.
선생님, 저는 지금
도망가는 몸이에요.
고향도 안되고
어디 가면?』

『우스운 인연이군요
고구려의 밭,
백제의 씨,

우리들의
편안할 곳은 지금
아무데도 없오.
하늘과 땅,

눈먼 구데기떼처럼
땅에 엎디어 매질 받으며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일 뿐
벙어리가 된
노예들의 땅.
그러나
가십시다, 진아라고 했죠?
금강 언덕
초가삼간.

아직 차령산맥 남쪽에
서기(瑞氣)가……』

석양,
가랑잎 위에서, 둘의 알몸뚱이는
꽃뱀처럼 얽혀 빠알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가을의,
바람과 햇빛과 산 속의
정기를 빨아들이면서, 둘의 피는
음악처럼 굽이쳐 흘러가고
있었다.

이때 설악산
양양골에선
해월이 양지밭에 앉아
짚신을 삼고 있었지.



 제 12장

독일, 윈극장에선
교향곡 &lt;운명&gt;을 연주하는
교향악단원의 손과 귀,
베토벤, 그는 1827년에 죽었던가,
그 음악은 이조말의 반도 하늘에도
메아리쳐 오고 있었을까,

베트남 정글 속에선,
불란서 식민지 침략군 맞아 싸우는
원주민의 우렁찬 함성,

일본에선
2백 년의 봉건쇄국주의가
문을 깨치고
미일수호조약을 체결,
기름기 오른 군벌 자본가들이
요정에 앉아 공장을
설계하는 날,

경복궁에선
조대비가, 중국 곤륜산서 따온
사슴 사향,
양지바른 대청마루 앉아
천산남로 거쳐온, 중국 상인과
흥정하고 있을 때.

1854년,
전봉준은
서해가 보이는 고부 땅
두승산 기슭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내려오는
농민의 아들,
키는 절구통 같은 오 척,
시원한 이마
맑고 두리두리한 눈동자가
벌어진 어깨 위에서 빛났다.

편안한 코,
우렁우렁한 음성은
듣는 사람의
살 속에 스몄다.

어려서부터
말이 없었는 편.

서당에서 책 끼고
돌아오는길,
양지쪽 메운
동네 아이들의 맨발과
두 줄기 콧물 보면,

함께 뛰어들어
자치기, 연날리기,
말타기, 씨름을
이끌었다.

고욤나무,
대나무가 많은 마을,
병으로 십여년 누워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농사일도 하고
서당 훈장일도 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리어
이따금
어머니의 무덤을 찾았다.

추석날이면
국화,
칠석날이면
참외,

세월은 갔다.
철이 들수록
그는 말수가 더
적어갔다.

어느날,
삼례장 갔다오는 길
길가 주막집 들러
막걸리 두 대접 마시고
나오니 누군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충청도, 동학접주 서장옥,
첫눈에 썩
뛰어난 그의 인품에
놀란 서장옥이,
부지런히 풋고추 고추장 찍어
입가심하고 뒤를 따라나섰다.

밀밭길 걸어오면서
열혈파 서장옥은 동학 얘기를 했다.
소맷 속서 꺼내주는
필사본 동경대전에서
들기름 냄새가 풍겼다.

개화정변에 실패,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이,
상투 깎고 어두운 마음
동경 은좌 거리를
걸어오고 있을 때,

1888년
전봉준은, 서장옥의 소개로
동학에 입도했다.

태백산 속
은신해 있던 해월이
보은으로 나왔다.
나흘을 걸어 보은땅
속리산 기슭 초가집에서
전봉준은 해월을 만났다.

수중 십만리
걸어온 사람의 얼굴이었을까,
가시밭길 삼만리
맨발로 걸어온 사람의
얼굴이었을까.

나무뿌리같이 드러난,
뼈로 얽어놓은
육신
그 속에서
하늘이 주었을까,
깊은 눈동자만, 조용히
세상을 뚫어보며
빛나고 있었다.

해월은,
1898년 6월 2일
서울 광희문 밖 형장 교수대에서
순교하던 일흔두살,
삼십사년 간을, 탄압에 쫓기며

동학을 물고
전국 방방곡곡
농어촌 찾아
노동자를 조직,
포교했다.

상엿군,
장돌뱅이,
거지,
엿장수,
로 변장하고.

어느 여름
동학교도 서노인 집에서
저녁상을 받았다.

수저를 들으려니
안방에서 들려오는
베 짜는 소리,

『저건
무슨 소립니까?』

『제 며느리가
베짜는가 봅니다.』

『서선생,
며느리가 아닙니다.
그분이 바로
한울님이십니다.

어서 모셔다가
이 밥상에서
우리 함께 다순 저녁
들도록 하세요.』

서노인이, 며느리 데리고 나와
상머리에 앉을 때까지
해월은 경문 외며 정좌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떠나는 해월을 전송하러
서노인 집안이 동구 밖
논길가지 나왔다,

막내 아이가
따라나오며 우니
서노인은 눈을 부릅떠
위협, 쫓아보내려 했다,
해월은,
주인을 가로막아
어린이의 머리 쓰다듬으며
그 자리 흙바닥에
무릎 꿇었다,

그리고 서노인에게
말했다,

『이 어린 분도
한울님이세요,
소중히 받드세요.』

가는 곳마다,
내일 떠날지
오늘밤 떠날지
알 수 없는 빈 집,
쓰러진 외양간에 묵으면서도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짚신을 삼고
멍석을 짜고
노끈을 꼬고
구럭을 얽고
과수나무를 심고
채소씨를 뿌렸다.

할 일 없으면
꼬았던 노끈 풀어서
다시 비볐다.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몇 날 안가 또
딴 데로 떠나셔야 할 텐데
그런 일 해
뭘 하시렵니까』

『안될 말,
한울님께서 사람을 내신 건
농사지으라고 내신 건데
농사짓지 아니하고
생산하지 아니하면
양반보다 나을게 없지 아니한가,

그리고 우리가
혹 이 멍석 쓰지 못하고
이 채소와 과일 먹지 못하고
딴데로 가게 된다 할지라도,

이 다음날 누군가가 이곳에
와, 멍석을 쓰고
채소와 과일을 따먹게 될게 아닌가?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한다면, 어디 가나 이 지상은
과일과 곡식,
꽃밭이 만발할 것이요
모든 농장은
모든 인류의 것,
모든 천지는 모든 백성의 것
될게 아닌가?』



 제 13장

쑥냄새 풍기는,
해월 묵고 있는
초가집엔 하루에도
수십명씩,
멀린 황해도, 평안도에서까지
농삿군 교도들이
괴나리봇짐 얽매고
드나들었다.
비록 굶주리고
헐벗은 행색들일망정,
눈동자마다에선 광채가 빛나고,
멀리서 온 동지들을 만나
서로 주먹 싸 쥐며, 눈물로
반가와하고,

왕가의 기둥뿌리가 썩었음을,
세상은 말세임을,
양반이 각지에서 마지막 발악하고 있음을,
서울 장안, 부산항군, 이미
왜국상인, 왜국간판에게 아랫배까지 내주기 시작했음을
개탄했다.
한 달을 묵으면서
각지의 농민 지도자들과 사귄
전봉준은 자기가
외롭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합천 해인사
경주 토함산, 마산, 진주 촉석루
여수, 순천, 화엄사를 거쳐
고향에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봉준은 그해 겨울
뜻 아니, 아끼는 아내의
죽음을 만났다.

동네 사람들 사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론,
봉준은 아내의 죽음을 두고
몇 날 며칠
식음을 전폐했다.

황토현 남쪽
양지바른 기슭,
가루 고운 흙 속에
자기 손으로 묻고
잔디를 입혔다.
밟으면서 울었다.

봄이면 꽃
여름이면 하늘
가을이면 귀뚜라미
겨울이면 추위

전봉준은 자주
아들의 손을 이끌고
아내의 무덤 앞 찾아와
말 없이
몇 시간씩
서 있다 가곤 했다.

그림이었으리라,
서해에 노을이 물든 석양,
그리고 달밤
동네 사람들은 언덕 위
어른과 소년
두 사람의 그림잘
자주 보았다.

그후, 봉준은
가끔, 두루마기 빨아 입고
서울을 다녀왔다.

밤길,
새벽길, 소맷자락으로 땀 씻으며
그의 집 드나드는
사람의 수도 많아갔다.

남원 사람 김개남,
그는 이미 열세 살 때
세미(稅米) 받으러 와
늙은 아버지께 행패하는
관속 두 사람
한 아름에 몰아
수채 구멍 쑤셔 박은 일로
곤장 백 개 맞은, 그리고서도 웃으며 일어났다는
8척 장사.

얼굴이 흰, 칠보 사람
손화중, 그는 임진왜란 때
전주성의 이조실록
내장산으로 묘향산으로 끌고 다니며
보전케 했던
손홍록장군의 후손,
가녀린 미남으로
일찍부터 해월의 감화 받은
그러나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밖에
많은 호남지방
동학접주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다음해 여름
봉준은 두 벌 김매놓고
서울을 다녀왔다.
서소문 밖, 객주집에
두 달을 묵으면서
인심,
세정을 살폈다.

같은 방 묵게 된
충청도 사람
신하늬와 의형제를 맺었다.

전봉준과 신하늬는, 마치
하늘이 마련해놓은
연분이기라도 한 것처럼
만나자 첫눈에
배포와 뜻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들어갔다.

두 살 위인 전봉준이 형
하늬가 아우,
그들은 해만 뜨면
거리 구경.
해만 지면 돌아와
등잔불 아래 엎뎌
세상 얘기로
밤을 새웠다.

남별궁,
지금 반도호텔이 서 있는 자리엔
그때 남별궁이 있었다.
외국에서 오는 사신들의 숙소,
이미
남별궁 근처, 일본인들의
전횡 무대,

언제 보아도
게다 신은
닷도상 옆에
수십 명의 갓쓴
벼슬아치
장사치들이 올망졸망
모여 서서
손을 비비는
광경.

자본,
대포,
를 앞세운
명치의 진출 앞에

벌써 냄새 잘 맡는
사대가
빌붙기 시작한 걸까,

청나라에 주었던
남한산성을
이젠
사무라이에게 주고 싶어
저리 간사
떨고 있는 걸까,

예나 내일이나
식민지하의
관리들이 배우는 건
오직 하나
아첨과 비겁,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왕실에서는 조심조심
청에 원병을 청했던 것.
청국은 원세개를 서울에 주둔시켰다,
일천 명의 군대와 함께.

금은,
아편,
비단,

그리고 상전국으로서의
권력을 함께 가지고 온
그들의 주변에는
정치 장사꾼
여자,
소매 상인.

주둔군은
한 가지 한 가지
사기 시작했다,

곶감, 대추, 명태, 돼지,
여자, 집, 명동 일대의 대지,
그리고 비단에 약한
조선사람들의
마음까지를,
그래서 명동
금싸래기 땅은
지금까지도 그의
아들의 소유,

그런데 또 일본이 왔다.
이조말의
반도는 흡사
접시 위 올라앉은
벌거벗은 생선,

멀리는 불란서, 미국, 영국,
러시아,
가까이는 중국과 일본,

마치 그들은
내기나 하려는 듯,
네가 두 발짝
나는 세 발짝
나는 세 발짝
너는 여섯 발짝

접시 위 생선을 두고
한 발 한 발
접근해오고 있었다.

청국의 왕실과
이왕가의 왕실 사이엔
주종의 관계 맺었다지만
양족 다
왕실의 지붕은 이미
무너지며 있었고
그래서
무너지는 옷을 벗고
실권자인 군부가
주인이 되어 반도를
호령하려 한 것,

2천만의 농민이
제주에서 두만가지 사이
뜸물처럼 엎디어
땅을 갈고,

2천만의 농민이
엎디어, 이루어 놓은
육체의
산더미 위

왕권은 대초롱을
깊이, 깊이 박고
김대감,
박정승,
아전,
이속들과
힘을 모아
2천만 농민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이성계가 파놓은 우물,
그리고 대대로 전승되는
그 살기름의 우물터는,
대대로 모든 지식분자들의
아귀다툼의 마지막 겨냥
출세의 최종 목표,

흙냄새 섞인,
기름이 스며 나오는
우물의 흡구(吸口)에
누구든 한 번
코를 박아본 사람이면
간도
눈도 미쳐서

세상없는 놈이 와,
뒷덜미 도끼로 찍어도,
목이 잘리우고도
혼만은 살아서
흡구 근처 떠나지 못하고
추억이 되어 빙빙
남아 돈다.

고시 공부 한다는 건
출세하기 위한 것,

출세한다는 건,
피 빨아먹는 자리,
놀고 먹는 자리,
배성의 피기름 솟는
흡구 자리 하나
차지한다는 것,

피라밋처럼
정상을 향해
벼슬길로
기어오른다.

형제의 등을 밟고
친구의 목을 부러뜨리고
제 자신의 낯짝도
쥐어뜯어 가며

벼슬 높은
정상으로
정상으로,

여기 저기
나 있는
달 표면의
분화구 자죽 같은
흡구 곁으로 기어올랐다.

오늘,
얼마나 달라졌는가.

변한 것은 무엇인가
서대문 안팎, 머리 조아리며
늘어섰던 한옥 대신
그 자리 헐리고 지금은
십이층 이십층의 빌딩
서 있다는 것,

진고개에 청계천, 이쪽 저쪽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람들의
옷맵시가, 갓에서 넥타이로
변모했다는 것밖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지금도 우물터
피기름 샘솟는
중앙 도시는 살찌고
농촌은 누우렇게 시들어가고 있다.

우리들의
움직이는 발
한 발자국

움직이는 손
한 팔짓이

누구의 등을 안 파고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잡초만 무성하는
악의 밭,
유린과 착취가
무한대로 자유로운
버려진 땅.

불성실한 시대에 살면서
우리들은,
비지 먹은 돼지처럼
눈은 반쯤 감고, 오늘을 맹물 속에서 떠 산다.
도둑질
약탈, 정권만능
노동착취,
부정이 분수없이 자유로운
버려진 시대

반도의
등을 덮은 철조망
논밭 위 심어놓은 타국의 기지.

그걸 보고도
우리들은, 꿀먹은 벙어리
눈은 반쯤 감고, 월급의
행복에 젖어
하루를
산다.

그날
하늬와 봉준이 본
이왕가의 내면도
그러한 것이었을까.



 제 14장

1892년,
해월은 전국 교도에게
호소문을 보냈다.

11월 1일
매서운 북풍 속서
호남평야 삼례역
3천 군중이 모였다,

제 1차 신원 시위 운동
보리밭 속서
충청, 전라, 양 관찰사에게
호소문을 보냈다.

 『동학을 허하여 주옵서.
지금 각지방에서는 군수로부터
서리 군교, 간사한 토호(土豪) 양반에
이르기까지 아침저녁으로
우리 죄없는 농민들의 가산
탈취하며, 살상 구타 능욕을
일삼고 있으니,

이는 오직 정부가 우리 동학을
사학시(邪學視)하여 제 1세 교주 수운 선생을
참수한 데에 비롯되나니
억울하게 순교한 수운선생의
원을 이제라도 풀어주옵소서.

우리의 도가 척양척왜(斥洋斥倭), 광제창생(廣濟蒼生), 보국안민(輔國安民), 사인여천(事人如天)
일진대 이 어찌 사도(邪道)가 되옵니까.』

닷새만에
전라관찰사 이경직의
깃달린 편지를 받았다,

『동학은 왕실이 금하는 바라.
어리석은 농민들이여, 칼로 베이기 전에
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 정학을
취하라.

앞으로 관리들에겐
푼전도 뜯어가지
못하게 이르겠노니.』

동이나 서나 세리(稅吏)들의 입은
열두 개, 적당한 기회에 적당한 말을
적당히 지껄여놓고 잊어버린다.

3천의 군중은
보은, 동학 총본부를 거쳐
서울로 모였다.

광화문 앞 광장
3천의 군중이
바둑판처럼
땅을 짚고
엎디어 있었다.
1892년 2월 초순
제 2차 농민 평화시위운동.

입에 물 한 모금 못 넘긴
사흘 낮과 밤
통곡과 기도로 담너머 기다려 봐도
왕의 화답은 없었다.

마흔아홉 명이 추위와
허기와 분통으로 쓰러졌다.
그러는 사흘 동안에도
쉬지 않고
눈은 내리고 있엇다.

금강변의 범바위 밑
꺽쇠네 초가 지붕 위에도
삼수갑산 양달진 골짝에도, 그리고
서울 장안 광화문 네거리
탄원시위 운동하는 동학농민들의
등 위에도,
쇠뭉치 같은 함박눈이
하늘 깊숙부터 수없이
비칠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그날, 아테네 반도
아니면 지중해 한가운데
먹 같은 수면에도 눈은
내리고 있었을까.

모스코, 그렇지
제정(帝政)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푸쉬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인간정신사의 하늘에
황홀한 수를 놓던 거인들의
뜨락에도 눈은 오고 있었을까.

그리고
챠이코프스키, 그렇다
이날 그는 눈을 맞으며
페테르부르그 교외 백화나무 숲
오바 깃 세워 걷고 있었을까.

그날 하늘을 깨고
들려온 우주의 소리, &lt;비창&gt;
그건 지상의 표정이었을까.
그는 그해 죽었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갔다.
그리고 짐승들의 염통도 쉬지 않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북한산, 백운대에서
정릉으로 내려오는 능선길
성문 옆에선,
굶주리다 죽어가는 식구들
삶아먹이려고 쥐새끼 찾아나온
사람 하나가,
눈 쌓인 절벽 속을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그날 밤,
수유리 골짝 먹는
멧돼지 두 마리가, 그
남루한 옷 속서
발을 찢고 있었지.

산은 푸르다,
말없이 푸르기만 하다.
오늘도 일요일이면, 낯선 사람들과
수통의 물 나누며 오르는
보현봉,
반도에 눈이 내리던 그날에도
말없이 서울 장안을
굽어보고만 있었다.

광화문이 열렸다,
사흘동안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
군중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문은 금새 닫혔다,
들어간 사람도, 나온 사람도 없었다,
그러면 그 사이
쥐새끽 지나갔단 말인가, 아니야,
바람이었다, 거센 바람이
굳게 닫힌 광화문의 빗장을
부러뜨리고 밀어제켜 버린 것이다.
그 문의 빗장은 이미
썩어 있었다.

모든 고개는 다시 더 제껴져
하늘을 봤다.
그 무수의 눈동자들은 다시 내려와
서로의 눈동자를 봤다,
눈동자.
주림과 추위와 분노에 지친
사람들의 눈동자,

단식하는 사람들의
눈동자는 맑다,
서로 마주쳐 천상에서 불타는
두 쌍, 천 쌍, 억만 쌍의
맑은 눈동자.

바둑판의 중앙에서
장대 같은 사나이가 일어섰다.
그의 어깨에도
괴나리봇짐이 메어져 있었다,
군중의 등불 같은 눈동자들이
집중했다. 장두 박광호,

『우리는 사흘을 기다렸다,
많은 동지들이 쓰러졌다,
죽음은 우리앞에 있다,
회답이 없다.
우린 파리새끼만 못한 목숨인가?

백성의 강산이다, 우리 조선은
광화문은, 왜 우리 어질고
착한 백성의 발길을 막는가.』

군중은 일어섰다.
주먹을 싸잡으며 하늘을
우러렀다,
벌판에서 솟구치는 무수한 미루나무 숲.

박광호는
두 팔을 활짝 벌여
손짓했다.

『앉아주시오. 그리고
열 사람만 나와 주시오
역적이 되고 싶은,
아직 기운이 남아 있는
열 사람만 나와 주시오,

문을 흔듭시다,
주먹으로 두드려봅시다.』

농민들은 다 일어섰다.
열 사람이 뽑혔다,

군중과 광화문과의 사이엔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 속을, 열한 사람의
대표는 허기진 기색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벽은 죽음이었다,
문은 죽음이었다,
죽음의 나락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가슴뿐이었다.
불덩이 같은 가슴,
가슴은 터지리라,

문이다,
고리다,

열하나의 가슴이
최후를 밀 듯
죽음을 밀었다.

열하나의 육신이 미끌어
쓰러지면서 스물두 개의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이미 끝난 일이다,
노란 천지를 상대로, 끝없이
두드렸다, 이미 끝난 일이다,
머리로 받았다,
이미 끝난 일이다.

싱겁다.
허사였다, 기다렸던
벌도 없었다
그 길로 교도들은
보은 속리산을 향했다.

이왕실은 치마꼬리가
삭아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겨드랑 밑으로 다시
추켜 올리면 될 것 같았지만
추키려 해도 추키려 해도
붙어 있을 까닭이 없었다,
아무릴 단도 깃도 허리끈도
다 삭아서, 빌빌 하는 걸,

늙고 메마르고 멍들고
삭정이만 남은 앙상한
허리 아래가 드러났다.

이제 엉덩뼈가 그 못생긴
한쪽 엉덩짝이 나타나리라.

해월이 대도소(大都所)에 나타나는
3월 열하루, 보은 땅에는
십여만 명의 농민이 모여들었다.
제 3차 무저항 농민 시위운동,

밥짓는 연기,
막사짓는 소리.
기도하는 소리.
발과 발,

무엇을 보았는가,
이조 5백 년, 억울하게만
살아온 농민들이
처음으로 자기 주먹을 보았는가, 이제야
자기의 얼굴
자기의 가슴을 보았는가.

어느새, 누가
달았는가, 여기저기
깃발이 나부꼈다,

『양민을 학살하지 말라』

『물리치자 폭정
구제하자 백성』

『몰아내자 왜놈
몰아내자 양놈
몰아내자 모든 외세』

『백성은 한울님이니라』

『일어나라 백성들이여
물리치자 관의 횡포』

급보에 접한, 조정
양반배들은
선유사 어윤중,
보은군수 이규백,
충청병사 홍계훈,
그리고 그의 휘하
일천 명의 군대를
보은땅 보내
해산하라고 위협,

지도자들과
사흘을 숙의한 해월은
사월 초닷새
자진 해산령을
내렸다.



 제 15장

날이 갈수록
세상 인심은
스산했다.

노른자와 흰자가
암탉 품 속에서
스무 하루를 지내면
병아리가 되어
껍질을 깨고
귀염 떨며 나온다.

한갓, 노른자와 흰자이던
액체가 자기 생명을 의식하고
다숩게 조직하며,
기구(祈求)하며,
내일을 주장하기 시작했을 때
달걀 속의 세상은
평화가 깨지고
불안 초조해진다.

내부의
살의
성장에 밀려나
깨어지는 달걀 껍질은
내부의
병아리 새낄
저주하리라,
반역자, 라고.

자각된 농민들의
성장으로
달걀 껍질은
균열되기 시작한 걸까.

어찌됐거나
세상 인심은
날이 갈수록
수런거렸다.

눈 녹이 바람
이 마을 저 마을
들썩여 놓고 다닐 때,
얼어붙었던
대지의 껍질도
나무의 껍질도
우리의 피부나
마음의 껍질도
싱숭생숭해지듯,

봉건사회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대구 팔공산에선
이름 모를 새들이 나타나
한 달 동안
하늘의 해와 달을 가리고
싸웠다,

이상한 울음 우는
칼새가 나타나
양쪽 새 다 죽이고 판가름냈다.
땅에 떨어지는
새의 시체가
소나기 같았다,

이상한 소문은
꼬리를 이었다.

오대산 속에선
소나무에 꽃이 피었다,

평안도 용강
우물 속에선
용대가리 같은
깜정 꽃줄기가 두 개,
관리나 양반이 가면
종적도 없어지고.

수덕사에선
겨울인데
복숭아꽃이 만발했다,

6월 초열흘날 밤에
불비가 오리라,
그 불비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흙에 발붙인 사람과
손에 흙묻친 사람뿐이리라,

무주 구천동에서
오백 명의 신출귀몰하는
군사가 훈련중이다,
석달 열흘의 불가뭄이 지나면
그 군사들이 나와
세상을 뒤집어 엎고
편안한 새세상 오게 하리라,

가는 곳마다
정자나무 밑 모여 앉아
농민들은 긴 한숨 쉬었다,
에이 쌍,
하늘과 땅
멧돌질이나 해라!

1893년 11월
전주 익산 등지에서, 또
농민 반란이 일어났다
고부에서도 일어났다,
허리띠 조른
삽과 지게의 행렬, 3년
부녀자까지 동원된
부역의 열매
북면 만석 저수지와
팔왕리 저수지,

가을이 되니
고부 군수 조병갑은
농민들에게 또 저수지 수세를 배당했다,

한 마지기 당
쌀 서 말,

엎친 자리 덮쳤다
호남 전운사 조필영,
호남지방 납세미(納稅米)를
배태워 보냈는데
서울 가서 되어 보니
5천 석이 모자란다,
미안하지만 다시 징수하겠노라,
고, 이속 앞세워
마을 뒤지고 다녔다.

익산면에선
영수증 없는 3천8백 석의 세미(稅米) 거둬
저희끼리 나눠먹고
다시 고지서를 내돌렸다,
곤장질, 당근질, 주리틀기로
난리 피우며.

오지영을 선두로
3천명의 농민이
익산 관아에 모여
시위했다.

고부군에선
전창혁을 필두로
5천 명의 농민이
관아에 쇄도하여
시위했다.

조대비의 심복
고부군수 조병갑은,
소원 들어줄 테니 전체가 해산하고
대표자 세 사람만 나와
협상하자고 제의했다.

나이 많은 세 사람이
자원하여 동헌 마당으로 들어갔다,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
김도삼, 정일서.

희끗
희끗
눈발 날리는
동헌 바깥마당,
수천 농민은
쇠스랑 삽, 끄을며
집으로 돌아가
하룻밤을 기다렸다.

이틀째도
눈은 날리고
아이들은 보채고
된장은 끓는데
소식은 없었다.

그 사이,
조병갑은 세 농민을
전주로 압송했다
전라감사 김문현께,
민란의 장본인을 보내오니
엄치해 달라는 편지와 함께.

전라감사 김문현은
세 농민대표를
형틀에 올려 반죽음시킨 뒤
고부로 되돌려보냈다.

조병갑은 이미 반죽음된
세 사람을 다시
새 형틀 위 묶어놓고, 밤새도록
불로 지지고 주리를 틀었다.

그날 새벽
매에 못견뎌
급기야 전창혁이 죽었다.

눈은 닷새째나
산과 들을 덮었다.
날리다 멎고
멎었단 다시
펑펑 쏟아졌다.

눈 벌판을
소요하는
된장찌개
동김치 냄새,

마을은 쥐죽은 듯
삼엄했다,
웃음소리 하나, 거리
한가하게 나 다니는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강아지도,
수채구멍으로
얼굴을 조금 내놓았다간
이내 사라졌다.

다듬이소리,
어린애 우는 소리,
글 읽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전갈을 듣고
녹두는 관아로 갔다,
아버지의 시체는 거적자리에 싸여
창고 옆 버려져 있었다.

봉준은,
눈물 한 방울
말 한 마디
얼굴색 하나,
까딱
없이,

뚜벅뚜벅,
그 두꺼운 손으로
아버지 전창혁의
늘어진 육체를 업었다.

업고 문 밖에 나오니
사십여 명의 젊은이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말없이
뒤를 따랐다.

그들은 눈길
두승산으로 가
언 땅을 파고
전창혁을 묻었다.

끝난 것일까,
봉준의 얼굴은
전날보다 더
너그럽고
편안해 보였다.

십여일 후, 고부에는
왕명받은 안핵사 이용태
역졸 8백 명 달고 나타나,
고을을 뒤집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닥치는대로 때려잡아
고기 엮듯 엮어
옥에 가두고
부녀자들은 총칼로 겁탈하고,

집엔 불을 질렀다.

봉준은,
후취 부인과 아들, 딸
사랑방으로 불러놓고
조용히
마주 정좌했다,

남매의 머릴
쓰다듬었다.

『얼마동안 태인 친정집
가 있어주오.

석이놈, 곶감을 좋아하는데
너무 먹어서
배탈이랑 나지 않게,

간간이 글공부시키고
분이랑 잘 키워주오.

무슨 일 있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며,
경우 봐서
애들 데리고
해남땅으로 가
변성명시켜

때 기다리도록 하오.』

봉준은 아들
석이 이마, 눈
딸 분이의 코, 입술을 번갈아 보았다.

까만
딸기 같은 촉촉한 눈동자
총기있는, 그러나
철없는 눈동자.

밖에선
눈보라가 날리고
문풍지가
심란스럽게 울었다.

며칠 뒤
봉준은 먼빛으로 보았다,
불에 싸인
자기 집.

그리고, 밤하늘
아름답게 수놓으며
불타는 자기 마을과
이웃마을들.

 제 16장

『세상의
어지러움은, 그 까닭이
외부에만 있는 거, 아닙니다,
손짓 발짓은 흘러가는 물거품,
우리의 내부가 더 문제입니다.
알맹이가,
속살이,
씨알이 싱싱하면
신진대사에 의해
외형은 변질됩니다.

외부로부터
다스려 들어오려 하지 말고
우리들의 내부에
불을 지릅시다.』
태인 최경선집의 사랑채,
충청도서 달려 온
하늬의 말이었다,

봉준은 고개를 저었다,

요원한 이야기요,
물론 옳은 생각이긴 하지만,

석가 죽은지 이미 3천년
노자 죽은지 이미 2천 수백년

그분들은 하늘을 보았지만
그분들만 보았을 뿐

30억의 창생은
아직도 하늘을 보지 못한게 아니오?
아직도 구제되지 못한게 아니오?

동학은
현실개조의 종교요.
자기혁명, 국가혁명, 인류혁명,
이게 바로 동학의
삼단계 혁명 아니오?

지금은 그래도, 기껏
지방관리들이나 양반 토호들
부패, 행패, 횡포로 끝나지만
이대로 더 둬보오,
십년도 못가서
강산은, 일본 아니면
청국 아니면 어딘가의
밥이 될게요,

9십9의 인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1의 악은
제거돼야 할 줄 아오.

좌시하면
9십9가 4십 되고
4십이 십 5가 되어
어느덧 우리의 자리는
악과 어둠의 세력에 의해
지워져버리오.』

『알겠습니다,
봉준형의 뜻.

제가 염려한 건 바로 그 문제입니다,
분풀이나
폭동은
무고한 희생만 남길 뿐이라는 말입니다,

이왕 일어서려는 의지
굳게 하셧으면
하늘끝까지,
벽을 찢고
하늘끝까지,

전쟁을 넘어서서
사회혁명으로 이끌자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봉기하면
국내문제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외세,
그들의 벽과 부딪치게 될지 모릅니다,

각오하셔야
됩니다, 외국의
조직된 신식 군대와
성능 좋은 대량 학살 무기,

구라파에서는 산업혁명 뒤,
신흥 자본주의 국가로의
꿈을 안고 껑충껑충
도약운동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 전쟁,
식민주의 전쟁
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구워낸 새로운
살인무기를, 일본이나
청국은 사들여 오고 있습니다,

각오하셔야 됩니다,
이왕 피를 보아야 된다면
책임도 지셔야 됩니다,
백성들만의 지상낙원,
손에 흙묻혀 일하는 사람들만의
꽃밭.

정권없는,
통치자 없는,
정부 없는
농민들만의 세상, 이상 사회.
우리들 손으로 이룩할
책임,
우리가 업어야 합니다.』

질화로에선
새로 담아온 불이
이글거렸다.
봉준은 눈을 감고
있었다. 심호흡을 했다
두 번, 세 번,
다섯 번,
하복부에서
중부로
가슴까지
점점 넘칠 듯이
부풀어올라왔다,
눈을 떴다,

두리두리한 눈,
그리고 서서히
손을 내밀었다.

하늬도 봉준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네 개의 손이 마주 얽혀
다숩게 감격하고 있었다,

봉준의 눈은
어느덧 감겨졌고
두 줄기의
물방울,
콧잔등의 기슭을 타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 17장

그로부터 한 달 후,
1894년 3월 21일.
전봉준이 영솔하는
5천 농민이
동학농민혁명의 깃발
높이 나부끼며
고부 군청을 향해 진격했다,

머리마다 휘날리는
노랑 수건,
질서 정연한
대열, 여기저기
높이 펄럭이는
깃발,

『물리치자 학정
구제하자 백성』

『몰아내자 왜놈
몰아내자 뙤놈
몰아내자 모든 외세』

『백성은 한울님이시니라』

『일어나라, 세상 모든 농민들이여
굴레를 벗어라』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농민혁명의 서곡은
반도에 그 첫 보습을
댔다,

엽총,
화승총,
장도칼,
쇠스랑,
괭이,
낫,
호미,
죽창,

울둘목,
성난 밀물처럼,
관아를 향해
달려 들어갔다,
울둘목, 그렇다, 목포에서 배타고
제주 가본 사람은 알리라
쏜살처럼 달리는 그
성난 밀물,

하늘에서는 까마귀떼
참새떼 까치떼도 신바람이 났음일까,
날개를 가슴끝 휘저으며
동학군의 머리 위, 설레발이쳐
따랐다,

집집마다에서
쏟아져나온 강아지, 바둑이,
부얼이, 삽살이까지도, 웬일일까
짖지도 않고
농민군의 앞 내지르며
신나게 뛰었다,

병석에 누워있던
부황든 노인네들도
지게 작대기 끄을며
버선발로 뛰어나와
행렬의 뒤를
넘어지며
따랐다,

집이 불태위고
아버지 빼앗긴
열두살짜리 소년들,
그리고, 남편 잃은 머리가 쑤세미 된
부인들까지도
돌멩이 두 개씩 안고
달렸다,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얻어맞았단 말인가
깨어졌단 말인가

깨진 항아리 속에서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휘장을 찢고 무엇을 보았단 말인ㄱ

맑은 강물을 보았단 말인가
안창에서 흐르고 있는
붉은 강물을 보았단 말인가

살 속 숨쉬고 있는
하늘을 보았단 말인가
정신 깨치고 흐르는 하늘을 보았단 말인가

생명을 보았단 말인가
광란에 마비돼 가던 혈관이
사관침으로 소생하기 시작했단 말인가

하늘을 보았단 말인가
피의 노랠 들었단 말인가
쇠옷을 긁어내고
다수운 피를 만졌단 말인가,

그들은 벌써
관아를 향해 뛰고 있는 발이 아니었다.

신들린 사람처럼
힘이 전신에 솟구쳐
견딜 수 없어, 그저 달리고 있었다

그건 기맥힌 하나의
슬픔이었을까.
수백 년의 누더기 속서 풀려나와
고삐를 스스로 끊고
뛰고 있었다

이유없이 얽매이었던
수십 대의 고비를 끊고
뛰고 있었다

하늘을 본 것이리라
자기 가슴속의 피를
만져 보고 놀란 것이리라

자기의 하늘을 보고
놀란 것이리라.

관아는 텅비어 있었다,
조병갑은 어젯밤 벌써
전주로 도망갔고
이속들도 쥐구멍 속 다
숨었다,

옥을 부쉈다,
뼈만 남은 농민들이 기어나와
관아에 불을 질렀다,

창고를 부쉈다
석류알 같은 3천 석의
쌀이 썩고 있었다,

무기고를 부쉈다
열한 자루의 일본도
스물두 자루의 양총
6백 발의 탄환이 나왔다.
동학군은
대오를 정돈했다
인원을 점검하니 3천이 늘어서 8천명,
전봉준을 둘러싼
수뇌진에서는
동학농민당 선언문을 작성하여
각 고을에 붙였다,

『전략 - 오늘의 고관들은 나라를 생각지
않고 녹위(祿位)를 도둑질하며 아첨을 일삼아,
충고하는 선비를 간언(奸言)이라 배척하고 정
직한 사람을 비도(匪徒)라 트집잡아 안으로 나
라 생각하는 인재가 없고 밖으로 학정의 관(官)만
늘어가니 인심은 갈수록 변하여 들어앉아도
편안한 날이 없고 나가도 보신(保身)의&nbsp;길이 없도다,
&nbsp; 중앙의 벼슬아치나 지방의 벼슬아치에 이르&nbsp;
 &nbsp;기까지 민족의 위태는 생각지 않고 내몸 내집
을 살찌게 할 계략에만 눈이 어두워
벼슬 뽑는 길은 축재(蓄財)하는 길로 되고
과거보는 마당은 물물거래하는 시장이 되며,
허다한 세금은 국고에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개인 금고에 충당되며, 사치와
음란이 두려운 줄을 모르니 팔도는
고기밥이 되고 만민은 도탄에 빠져 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근본이 허약하면
나라가 쇠약해지는 법이라,
보국안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병을 두어
오직 혼자 잘 살기만 도모하고 녹위를
도둑질하니 어찌 그럴 수 있으랴,

우리 일당은 비록 초야의 농민이나
나라의 땅으로 먹고 살고 나라의 옷을
입고 사는지라, 나라의 위망을 좌시할 수
없어 팔도가 마음을 함께 하고

억조가 의논을 거듭하여 이제 의로운
깃발 들고 보공과 안민을 목숨 걸고
맹세하노니, 오늘의 이 광경이 비록
놀라운일이라 하나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각자 생업에 안온하여, 함께 강산의 태평세월
을 축하하며 다 함께 성스런 혜택 누리게 되
면 천만다행으로 아노라,
1984년 3월 21일
『동학농민혁명본부』

울 밑,
각시풀, 닭꽁지
바람에 날리고
나물 캐는 처녀들 다홍치마 속
심술스런 봄바람 부풀 때

태백,
두메 산골,
양지쪽 움돋는 산나물 눈
보고
암사슴 마음은
미쳤다.

두승산에서
황토현이르는 언덕
수놓은
화창한 진달래,

그날,
강산을 채웠으리라,
하늘
을 비치는
투명한
꽃잎.

고부성에는
최경선 인솔하는 팔백명 남겨두고
농민군 주력부대는
백산을 향해 진격했다,
서울 갈 세미
수십만 석이
쌓여 있는 항구,

농민군이 이르기 전
백산에서는 백여명의 관병들이
환영 깃발 들고 십리 밖까지 나와
농민군을 영접했다,
꽃다발 쏟아지는
무혈 입성.

바닷가에 진을 치고
작전계획,
부대편성,
인원 점호했다,
전녹두, 김개남, 손화중, 김남지,
신하늬, 그리고
일만 삼천 명,

용서……,
이 뒤,
전주성 입성까지의
상세한 영웅
1 Comments
하늘 2007.03.02 02:25  
고맙습니다. 귀한 자료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보스턴에서/하늘.
제목 저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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