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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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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love 0 5924
저자 : 기형도     시집명 : 입 속의 검은 잎
출판(발표)연도 : 1989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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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 형 도


이사온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의 집 단장들은 모두 빛나는 유리들로 세워졌다.

골목에서 놀고 있는 부주의한 아이들이
잠깐의 실수 때문에
풍성한 햇빛을 복사해내는
그 유리담장을 박살내곤 했다.

그러나 얘들아, 상관없다.
유리는 또 갈아끼우면 되지
마음껏 이 골목에서 놀렴.

유리를 깬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이상한 표정을 짓던 다른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곧 즐거워했다.
견고한 송판으로 담을 쌓으면 어떨까
주장하는 아이는, 그 아름다운
골목에서 즉시 추방되었다.

유리 담장은 매일같이 깨어졌다.
필요한 시일이 지난 후,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충실한 그의 부하가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유리 담장을 떼어냈을 때, 그 골목은
가장 햇빛이 안 드는 곳임이
판명되었다, 일렬로 선 아이들은
묵묵히 벽돌을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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