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호박 - 원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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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호박 - 원재훈

시사랑 0 1505
저자 : 원재훈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2003     출판사 :
화초호박
 
원재훈
 

창가에 있는 화단엔 가끔씩 고양이 두 마리가 앉아 있다. 소나무 아래 볕이 있는 자리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면 도망간다. 그저 창문을 닫고 조용히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가 응시하는 쪽을 바라본다
알 수가 없다, 무얼 보는지

가끔씩은 무섭게 나를 노려보기도 한다

썩은 화초호박을 화단에 던져두었다. 습관적으로 쓰레기 봉투에 담으려다 이건 생명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호박은 쓰레기가 아니야, 썩은 호박은 사람의 병든 육체와 같은 것

고양이가 앉아 있던 화단의 한 구석에 햇볕이 따뜻하다

친구들이 와서 차를 마시고 가고, 전화 오고 전화 걸고, 신문대금을 받아가고,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화초호박을 던져 놓았던 화단을 보았다. 화려한 붉은 색은 사라지고 허연 껍질만 남아 있다 통통했던 속살은 어디로 갔나? 달콤한 육체와 같았던 그 속살이 다 사라지고, 땅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흙이 되어가고 있다

오! 씨앗이구나
무섭게 나를 바라보던 고양이의 눈빛이구나

살며시 허연 호박의 껍질을 들어내자 부화한 병아리 같은 씨앗들이, 찬란한 고독의 뿌리들이 숨어 있었다. 생명이구나 싶은 생각에 가슴이 철렁한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설레이고 있는데. 화단 한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 눈빛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슬며시 돌린다

고양이 두 마리,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lt; 에머지 2003년 2월호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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