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예수 - 정호승

홈 > 시 백과 > 시인의 시
시인의 시
 
* 특정 종교나 정치.사상, 이념에 치우친 작품과 다수 회원이 삭제를 요청하는 글은 양해없이 삭제되거나 개인게시판으로 옮겨집니다.
* 저자난에는 이름만 사용해야 하며, 별명이나 아호 등을 사용해 등록자 이름과 저자(시인)의 이름이 달라지면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 모두를 위하여 한 번에 많은 작품을 연속해서 올리는 것은 지양하시길 부탁드립니다.
* 목록의 등록자 이름에 마우스를 놓고 클릭하시면 해당 등록자가 올린 작품을 한번에 조회할 수 있습니다. 
* 검색시에는 리스트 하단 <다음검색>버튼으로 나머지 검색 결과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서울의 예수 - 정호승

국화꽃향기 1 5944
저자 : 정호승     시집명 : 내가 사랑하는 사람
출판(발표)연도 : 2003     출판사 : 열림원
서울의 예수

 정 호 승


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
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
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
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뒤로 재빨
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
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
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
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
물고, 예수는 절망의 끝으로 걸어간다.


3

목이 마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
들어 목이 마르다. 등불을 들고 걷는 자는 어디 있느냐.
서울의 들길은 보이지 않고, 밤마다 잿더미에 주저앉아서
겉옷만 찢으며 우는 자여. 총소리가 들리고 눈이 내리더
니, 사랑과 믿음의 깊이 사이로 첫눈이 내리더니, 서울에
서 잡힌 돌 하나, 그 어디 던질 데가 없도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운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눈 내리는
서울의 밤하늘 어디에도 내 잠시 머리 둘 곳이 없나니, 그
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술잔을 들고 어둠 속으로
이 세상 칼끝을 피해 가다가, 가슴으로 칼끝에 쓰러진 그
대들은 눈 그친 서울밤의 눈길을 걸어가라.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벽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
한 인간의 귀는 풀잎에 젖어, 목이 마르다. 인간이 잠들기
전에 서울의 꿈이 먼저 잠이 들어 아, 목이 마르다.


4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
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먹고 싶다. 꽃
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
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
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


5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
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
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이름을 간절히 사
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1 Comments
그냥바람 2006.10.30 17:55  
이시를 처음 보고 이 긴시를 처음 보고 잠시 현기증이 ...
세월이 흘러 벌써 10몇년이 지나도 여전히 길고 .....이시 단 한편으로인해 그후의 이시인의 시집에 눈길이 갔는데 더러 실망도 있었고 더러 기쁨도 있었고.... 격동의 80년대를 넘어 아름다운 한폭 서정으로 무사 귀환하길 늘 바라는 마음!!!
제목 저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