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 자락에 나를 묻은 건 -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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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남산 자락에 나를 묻은 건 - 박노해

poemlove 0 6345
저자 : 박노해     시집명 : 참된 시작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경주 남산 자락에 나를 묻은 건

박노해


바람찬 날이다
경주 남산
민들레 꽃씨는 바람에 흩날리고
바람 속에서
바람을 품고
천년의 긴 호흡으로
경주 남산 자락에 나를 묻은 건
바람이었나 하늘이었나

밤새 독거방 낡은 창은 덜컹대고
감시등 불빛 아래
유유히 떠도는 민들레 꽃씨처럼
내 영혼은
저문 들길 지나 낯선 산굽이를 돌아서는
출가승의 옷자락처럼 허허로운데
무겁구나 지나온 날
깊어가는 상처는 그칠 줄 모르고
사흘 밤낮 몹시 아픈 날
스스로 치욕의 삭발을 하고
찬 마룻바닥에 모로 누워 회색벽에
무겁게 토해내는 신열의 부르짖음
무너졌다, 패배했다, 이렇게
흐르는 눈물 흐르는 대로 흘러
그래 지금 침묵의 무덤을 파고
나를 묻는다 나를 암장한다

숨죽인 호곡처럼
머리 푼 밤바람은 쓰러지는데
어둠속으로 얼굴들이 흐르고
해가 길어지고 해가 짧아지고
서리 내리고 눈이 내리고
죄닦음이 다하고 눈 맑아진 어느날
내 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씨앗 하나
피투성이 목숨으로 품어온 씨앗 하나

한 순간, 싹.이.틀.까
젖어드는 눈 감으면
벽 그림자 ----
상처 속에 싹트는 씨앗 하나로
경주 남산 자락에 나를 묻은 건
아아 바람이었나 하늘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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