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를 긋는다 -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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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를 긋는다 - 박노해

poemlove 0 3470
저자 : 박노해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성호를 긋는다

 박노해


사형, 사형이다

이렇게 올 것이 온 것이다
호송차는 사이렌 소리를 지르며 밤길을 달리고
붉은 포승줄에 묶여다시 돌아온 독거방
마룻바닥에 놓인 식은 짬밥 앞에서
침묵의 성호를 긋는다
떨리는 성호를 긋는다

아, 나는 지금 외로운 것이다
나는 지금 붙들고 싶은 것이다
이 운명을 피해보고 싶은 것이다
밧줄에 목 매달리는 불안함도 뼈아픔도
다 마주치면 순간인데
새삼스런 이 울음은
나약한 인간의 애착인가 두려움인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불러보며
사라져갈 내 인생위에 성호를 긋는다
나의 노동과 시와 투쟁의 기억 위에
서러운 애무처럼 성호를 긋는다
마지막 검은 천이
두눈을 가리우는 최후의 순간까지
그래, 좀더 의연하지 않으면 안된다
좀더 순결하고 좀더 아름다운
노동자의 미소를 닦아두지 않으면 안된다

이마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침묵의 성호를 긋는다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절정,
그 검은 땅 위에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리면
노랗게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끝내 부활로 이어지고야 말
나의 사랑, 나의 믿음,
아 우리들 혁명의 성호를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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