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 -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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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 - 박노해

poemlove 0 4467
저자 : 박노해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마지막 시

박노해


--여기는 안기부 지하밀실 151호 체포된 지 열흘 쯤 된 날짜조차 알 수 없는 저녁 시간 이제 나의 체력은 소진되어 자꾸만 헛소리와 환영에 시달리면서 나는 차츰 정신을 잃어 가고 있다 조직을 지키기 위하여 수백 수천 동지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더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 자결을 앞두고 마지막 남은 기력을 짜내어 숨죽인 흐느낌으로 이 시를 쓴다---


거대한 안기부 지하밀실을
이 시대의 막장이라 부른다
소리쳐도 절규해도 흡혈귀처럼
남김없이 빨아먹는 저 방음벽의 절망
24시간 눈 부릅뜬 저 쌔하얀 백열등
불어 불엇! 끝없이 이어지는 폭행과
온 신경이 끊어 터질 듯한 고문의 행진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된다
더이상 무너질 수는 없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아 그것은
우리들 희망의 파괴
우리 민중의 해방 출구의 붕괴,
차라리 목숨을 주자
앙상한 이 육신을 내던져
불패의 기둥으로 세워두자

서러운 운명
서러운 기름밥의 세월
뼛골시게 노동하고도 짓밟혀 살아온 시간들
면도날 처럼 곤두선 긴장의 나날 속에
매순간 결단이 필요했던 엄혹한 비밀활동
그 거칠은 혁명투쟁의 고비마다
가슴 치며 피눈물로 다져온 맹세
천만 노동자와 역사 앞에 깊이 깊이 아로새긴
목숨 건 우리들의 약속 우리들의 결의
지금이 그때라면 여기서 죽자
내 생명을 기꺼이 바쳐주자

사랑하는 동지들
내 모든 것인 살붙이 노동자 동지들
내가 못다 한 엄중한 과제
체포로 이어진 크나큰 나의 오류도
그대들 믿기에 승리를 믿으며
나는 간다 죽음을 향해 허청허청
나는 떠나간다

이제 그 순간
결행의 시간이다
서른 다섯의 상처 투성이 내 인생
떨림으로 피어나는 한줄기 미소
한 노동자의 최후의 사랑과 적개심으로 쓴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
마지막 생의 외침
아 끝끝내 이 땅 위에 들꽃으로 피어나고야 말
내 온 목숨 바친 사랑의 슬로건,

&#039;가라 자본가 세상, 쟁취하자 노동해방&#039;


*막장: 안기부원들은 24시간 햇빛 한점 들지 않는 지하 밀실을 막장이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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