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포자의 꿈 -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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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포자의 꿈 - 박노해

poemlove 0 3757
저자 : 박노해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배포자의 꿈

 박노해


때르르르 릉--새벽2시
며칠째 잔업으로 무거운 몸을 깨어
졸리운 눈을 부비며 후다닥 일어나
운동화끈을 꽉 잡아매고 새벽길 나선다

지정된 전봇대의 비표 스티커가 선명해
아 오늘도 우리 동지들 이상없구나
약속 자오엔 벌써 동지들이 어김없이 나와
잽싼 손매로 신문접기에 분주하다

나에게 할당된 500부를 챙겨들고
나지막히 굳센 소리로 투쟁! 손인사를 나누고서
어둔 골목길을 발소리 죽이며 내달려
한부 한부 정성껏 집들이를 시작한다

닭장집을 지나 기숙사를 거쳐
철야중인 후문담을 타넘고 공단거리를 내뛰며
어둠속에 잠들은 이 공단거리는
이 숨막히는 절망의 공단거리는
더 이상 노예들의 거리일 수 없어
날만 새면 몸팔러 끌려들어가고
해지면 진빨려 내팽겨쳐지는
임금노예들의 축 늘어진 고역의 거리일 수 없어

비록 값싼 용지 위의 흐릿한 인쇄지만
우리의 신문은 한점 한점 불씨가 될 것이다
노동형제들에게 새로운 자각과 전망을 주고
투쟁의 열정을 불러일으켜 좌절과 주저를 떨쳐내고
모두에게 해야 할 일감을 찾아 나서게 할 것이다

날렵한 밤고양이처럼 어둔 길만 골라 내딛으며
지난주 3공단에서 체포된 정동지는 지금쯤...
엄습하는 불안감에 콩콩 뛰는 가슴을 다잡아
두눈 부릅뜨고 사주를 경계하며
정확하게 쏜살처럼 배포선을 내달린다

무겁게 잠들은 이 공단거리가
굴종과 강제노동의 노예들의 거리가
온 귓전이 멍멍한 힘찬 함성으로 깨어나
빛나는 근육의 물결로 온 세상을 뒤흔들며
노도처럼 진군해나갈 해방투쟁의 공단거리
아아 빛나는 그날의 거리를 꿈꾸며
칼날 같은 긴장으로 좌우를 살피며
한부 한부 뜨거운 열망을 부어
점점이 불꽃을 지펴나간다

아직은 어둠 깊은 거치른 공단거리
날쎈 제비처럼 배포선을 줄달음치는
굳건한 노동자의 팽팽한 몸짓 위로
신새벽 붉은 태양 동터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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