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처녀의 고독은 둥글다

홈 > 시 백과 > 시인의 시
시인의 시
 
* 특정 종교나 정치.사상, 이념에 치우친 작품과 다수 회원이 삭제를 요청하는 글은 양해없이 삭제되거나 개인게시판으로 옮겨집니다.
* 저자난에는 이름만 사용해야 하며, 별명이나 아호 등을 사용해 등록자 이름과 저자(시인)의 이름이 달라지면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 모두를 위하여 한 번에 많은 작품을 연속해서 올리는 것은 지양하시길 부탁드립니다.
* 목록의 등록자 이름에 마우스를 놓고 클릭하시면 해당 등록자가 올린 작품을 한번에 조회할 수 있습니다. 
* 검색시에는 리스트 하단 <다음검색>버튼으로 나머지 검색 결과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야구처녀의 고독은 둥글다

가을 0 1349
저자 : 성미정     시집명 : 대머리와의 사랑
출판(발표)연도 : 1997     출판사 : 세계사
야구처녀의 고독은 둥글다                               

                                      성미정


  처음에 너는 고독은 날카로운 그 어떤 거라고 짐작했다 고독 때문에 자주
명치끝이 아팠던 너로선 그럴 만도 했다 나이와 더불어 너는 통증에 익숙해
졌다 그러나 통증을 감추기는 쉽지 않았다 친구들과 있을 때 넌 너무 말을
많이 하거나 아예 하지 않았다 고독이 드러나는 게 싫었던 거다 친구들은
그런 너를 떠났다 가족들은 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탄식했다 고독은 자주 너의 귀를 막았다
  고독에 잠긴 널 불편해하지 않는 건 TV뿐이었다 방에 틀어박혀 TV와 지
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느날 방망이에 맞고 혼자 날아가는 공을 보았다 하
얗게 질린 채 공기 속을 회전하는 공에서 넌 터질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두
터운 장갑 안으로 숨어드는 공에선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을 만났다 그런 게
야구라고 불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넌 왠지 고독이라 부르고 싶었
다 야구는 고독이라 불리는 편이 어울린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 너는 야구 중계를 보는 가족들을 보았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야구광인 듯했다 지금껏 눈치채지 못한 것이 의아할 정도였다
공통관심사를 발견한 넌 몹시 기뻤다 가족들 틈에 슬쩍 끼여들어 야구 얘기
를 했다 네가 가장 아끼는 고독은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날아간 공이라고
고백했다 그 공이 그렇게 사라진 건 그만큼 고독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가족들은 사라진 공의 행방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오직 눈앞의 공만 바라보
았다 가족들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다
  넌 한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구에 대해 말했다 친
구들의 태도는 가족들과 다를 게 없었다 어떤 친구는 숫제 대꾸도 하지 않
았다 다른 친구들은 그건 야구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자신이 본 야구에
대해 떠들었다 너는 그들이 말하는 야구를 본 적이 없었다 넌 친구들을 떠
났다 하지만 인정해야 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야구가 존재한다는 사실
을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야구에 잠겨 있을 뿐이라는 것도 이제
너는 고독이 둥글다고 생각한다 이후 고독은 너에게 더이상 통증을 주지 않
을 것이다 다만 끝도 시작도 알 수 없는 둥근 공처럼 지루할 것이다
0 Comments
제목 저자(시인)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