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번은 찾아온다는 모자를 벗기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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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은 찾아온다는 모자를 벗기는 바람

가을 0 1235
저자 : 성미정     시집명 :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출판(발표)연도 : 2003     출판사 : 민음사
언젠가 한번은 찾아온다는 모자를 벗기는 바람
 
                                                          성미정


그 바람은 불꽃처럼 뜨겁고
회오리처럼 난폭할 거라고
순식간에 모자를 불태우거나 날려버릴 거라고
늘 상상했는데

바람이 내게로 왔을 때
바람은 숨소리처럼 작았고
봄볕처럼 부드러웠는데
그래서 바람을 알아볼 수 없었는데

바람은 모자 속에 스며들어
서서히 머리를 따스하게 했는데
그제서야 나는 바람이 찾아온 걸 알고
모자를 벗었는데

내 늙고 지친 모자를 쉬게 하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려 온 모자를 벗기는 바람
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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