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피리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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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8 12:48
저자 : 김시천
시집명 : 늙은 어머니를 위하여
출판(발표)연도 : 2003
출판사 : 내일을여는책
보리피리
김시천
어릴 적엔 벌거숭이로 놀아도 좋았지
맨발이어도 좋고 배가 고파도 좋았지
보리피리 꺾어 불며 종일 혼자라도 좋았지
보리밭 푸른 바다 한가운데를 헤엄치며 놀았지
누이가 걸어준 감꽃 목걸이 배고프면 하나 둘 따먹으며 놀았지
감자 서너 개 으깬 보리밥에 고추장 싹싹 비벼 먹고
멍석 깔고 누우면 무서운 옛날얘기 밤 깊은 줄 몰랐지
밤하늘 별꽃 하나 둘 헤면 모깃불 토닥토닥 자장가 불렀지
그러다가 나팔꽃이 젖은 몸을 일으켜 나팔을 불면
어김없이 눈부신 햇살이 산에서 내려와 방문을 두드리고
그러면 마술처럼 모든 일들이 다시 시작되곤 하였지
잉잉거리는 벌 소리의 유혹에 다시 또 넘어가고
돌담 아래 호박꽃 속에 숨어 있는 벌과 숨바꼭질하다가
아차, 그만 벌에 쏘여 온 집안을 홀딱 뒤집어 놓았지
아, 그 된장 ! 어디든 갖다 바르면 척척 약이 되던
벌 쏘인 손가락에 어머니께서 발라주시던 그 된장 !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그건 옛날얘기일 뿐이라고 말들 하지만
어쩌랴 내 가슴은 아직 보리피리 필리리 필리리
어쩌랴 내 가슴은 아직 푸른 하늘 푸른 보리밭
어쩌랴 내 가슴은 아직 푸른 벌거숭이
김시천
어릴 적엔 벌거숭이로 놀아도 좋았지
맨발이어도 좋고 배가 고파도 좋았지
보리피리 꺾어 불며 종일 혼자라도 좋았지
보리밭 푸른 바다 한가운데를 헤엄치며 놀았지
누이가 걸어준 감꽃 목걸이 배고프면 하나 둘 따먹으며 놀았지
감자 서너 개 으깬 보리밥에 고추장 싹싹 비벼 먹고
멍석 깔고 누우면 무서운 옛날얘기 밤 깊은 줄 몰랐지
밤하늘 별꽃 하나 둘 헤면 모깃불 토닥토닥 자장가 불렀지
그러다가 나팔꽃이 젖은 몸을 일으켜 나팔을 불면
어김없이 눈부신 햇살이 산에서 내려와 방문을 두드리고
그러면 마술처럼 모든 일들이 다시 시작되곤 하였지
잉잉거리는 벌 소리의 유혹에 다시 또 넘어가고
돌담 아래 호박꽃 속에 숨어 있는 벌과 숨바꼭질하다가
아차, 그만 벌에 쏘여 온 집안을 홀딱 뒤집어 놓았지
아, 그 된장 ! 어디든 갖다 바르면 척척 약이 되던
벌 쏘인 손가락에 어머니께서 발라주시던 그 된장 !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그건 옛날얘기일 뿐이라고 말들 하지만
어쩌랴 내 가슴은 아직 보리피리 필리리 필리리
어쩌랴 내 가슴은 아직 푸른 하늘 푸른 보리밭
어쩌랴 내 가슴은 아직 푸른 벌거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