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운소묘(夏雲素描)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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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3 01:40
저자 : 김현승
시집명 : 마지막 지상에서
출판(발표)연도 : 1975
출판사 : 창작과비평사
하운소묘(夏雲素描)
김 현 승
그날의 은방울이
하늘에서 울기 전
여섯시엔
산마루의 정말체조(丁抹體操)
삼십분엔 분홍빛 공길 찢어라
태양이 보석처럼 쏟아지게……
오전의 해협을 건너오는
너희들의 여름 옷이 이다지도 흰 것은
저 봉우리와 젊은 섬들이
이렇게도 푸른 탓.
정오의 사이렌이 채찍 끝처럼
어느 도심에서 휘어지면
일제히 서쪽으로 셔터를 내리는
가로수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소낙비의 급강하 훈련이 없는 오후엔
띄엄띄엄 만화를 그리거나
이발(理髮).
또
사라진 궁전을 짓기 위하여
푸른 들 끝에 화강암을 나르기도 하고,
고가선 너머
도시의 가장자리가 연기에 물드는
보랏빛 시간이 오면
먼 들 끝에 호올로 나아가
제주마(濟州馬)를 몰고 가는 목동이 되든지
그렇지도 않으면
먼 하늘 가에 아름다운 홍포(紅布)를 입은
꿈 속의 성주(城主)라도 한 번 되어 봐야지……
김 현 승
그날의 은방울이
하늘에서 울기 전
여섯시엔
산마루의 정말체조(丁抹體操)
삼십분엔 분홍빛 공길 찢어라
태양이 보석처럼 쏟아지게……
오전의 해협을 건너오는
너희들의 여름 옷이 이다지도 흰 것은
저 봉우리와 젊은 섬들이
이렇게도 푸른 탓.
정오의 사이렌이 채찍 끝처럼
어느 도심에서 휘어지면
일제히 서쪽으로 셔터를 내리는
가로수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소낙비의 급강하 훈련이 없는 오후엔
띄엄띄엄 만화를 그리거나
이발(理髮).
또
사라진 궁전을 짓기 위하여
푸른 들 끝에 화강암을 나르기도 하고,
고가선 너머
도시의 가장자리가 연기에 물드는
보랏빛 시간이 오면
먼 들 끝에 호올로 나아가
제주마(濟州馬)를 몰고 가는 목동이 되든지
그렇지도 않으면
먼 하늘 가에 아름다운 홍포(紅布)를 입은
꿈 속의 성주(城主)라도 한 번 되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