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오리 하나가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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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오리 하나가 문득

가을 0 1156
저자 : 이숙희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실오리 하나가 문득

이숙희


샤워를 끝낸 후 거실로 나와 불을 켠다
얼굴에 로션을 바르다 뒤집어 입은
옷의 솔기를 본다 순간
내 삶 한 부분이 삐어져 나와
이 옷처럼 뒤집힌 게 아닌가 두리번거린다
바늘 뜸을 빠져나온 실오리 하나가 문득
슬픔의 눈처럼 희다
실밥을 뜯으며 칠칠치 못한 딸 땜에
눈 감지 못한 어머니의 반짇고리서
가위를 꺼내 도드라진 삶 한 부분을 잘라낸다
미덥지 못한 딸이 보지 못한
소소한 것들을 발라주며 안과 밖의 경계를
매끈하게 꿰매주시던 어머니
오늘은 푸른 멍처럼 사무친다
다시 옷을 뒤집어 입어도
몸 안 구석구석에 숨은 솔기의 버짐들
곤드라지며 얼굴 발라당 뒤집고 불거진다

변기를 빠져나가는 실오리 하나가 문득 고개를 젖히고
떨어져 나온 몸 곳곳의 내밀한 기억을 회상하듯
완전한 슬픔에 휩쓸려갈 때 비로소 나의
삶 한 부분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였음을 뒤 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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