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렌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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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렌즈 속으로

가을 0 1146
저자 : 강해림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유리렌즈 속으로 

강해림


살았던 날들은 어떤 식으로든 증거할 것이다
생의 목표를 겨냥하듯, 노려보는
피사체인 나를 향한
유리렌즈와 나와의 적정거리
 
냉장고에서 갓 꺼낸
생선의 붉은 피가 도마 위에 스미듯
눈 한번 깜빡할
찰나 속으로 나는 사라진다
 
그의 차고 딱딱한, 시세포 속
그물망에
빛의 더듬이에 찔린 나와
도무지 굴절될 기미가 보이지 않던 또 하나의 내가
겹쳐진 채 반쯤 희미하게 웃고 있다
물구나무 서 있다

초점 하나로 요약하기엔 너무 멀리 떠나온 걸까?
몸속 뼈들이 서로 끌고 당기며
싸우는 소리로
나의 웃음은
너무 오래 흔들리고 탈색된 것임이 분명하다

검은 커튼 드리워진 암실에서
나는 인화된다
필름 속
빛이 지나간 자리만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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