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비 1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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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5 02:02
저자 : 강유정
시집명 : 네 속의 나 같은 칼날
출판(발표)연도 : 1995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붉은 비 1
강유정
언제나 비듬 같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는 언덕 위의 판잣집을 지나왔는데 그날은 내가 언덕을 내려올 때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고함 소리와 그녀의 남편이 무언가 집어던져 깨어지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제비꽃이 길가에 가득 피어 있는 즐거움을 가지고 길을 내려왔다. 그녀의 남편은 신경통이 생기고 나서부터 그 성격이 괴팍해져서 누구나 가까이할 수 없었다. 그는 지독한 신경통과 함께 세 살바기 잃어버린 딸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 딸이 이제 스물이나 넘은 처녀가 되어 자기를 보러 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의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녀는 입에 거품을 물고 네놈의 죄지, 네놈의 죄라고 하면서 엉겨붙었다. 묘하게도 제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그 언덕의 판잣집은 언제나 양재기나 그런 유의 물건이 부딪치는 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언덕의 서편으로 자작나무와 가문비나무가 드문드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녀의 남편은 가끔 신경통의 다리를 질질 끌며 언덕 아래 하늘을 덮은 제비꽃을 내려다보다 가래를 돋우곤 하였다.
강유정
언제나 비듬 같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는 언덕 위의 판잣집을 지나왔는데 그날은 내가 언덕을 내려올 때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고함 소리와 그녀의 남편이 무언가 집어던져 깨어지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제비꽃이 길가에 가득 피어 있는 즐거움을 가지고 길을 내려왔다. 그녀의 남편은 신경통이 생기고 나서부터 그 성격이 괴팍해져서 누구나 가까이할 수 없었다. 그는 지독한 신경통과 함께 세 살바기 잃어버린 딸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 딸이 이제 스물이나 넘은 처녀가 되어 자기를 보러 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의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녀는 입에 거품을 물고 네놈의 죄지, 네놈의 죄라고 하면서 엉겨붙었다. 묘하게도 제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그 언덕의 판잣집은 언제나 양재기나 그런 유의 물건이 부딪치는 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언덕의 서편으로 자작나무와 가문비나무가 드문드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녀의 남편은 가끔 신경통의 다리를 질질 끌며 언덕 아래 하늘을 덮은 제비꽃을 내려다보다 가래를 돋우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