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화한다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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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6 15:02
저자 : 고경숙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나는 진화한다
고경숙
자작나무 사이로 해가 지고 있다
아침이면 나무줄기에 힘차게 등을 치며
근육을 다지던 해는, 이 저녁
女性으로 지고 있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소진(消盡)한 몸 노을로 풀어져
붉은 이불호청 위에 나뭇잎새 몇 장
길을 따라 눕는다
저 해는 어제 졌던 해의 재기(再起)가 아니다
男性으로 태어나 女性으로 소멸하는
하룻날 兩性의 삶이다
고될 때마다 性을 맞바꾸며 진화했던
내 어버이의 아름다운 혼돈이다
자작나무 사이로 해가 지는 저녁이면
내 턱에 까칠한 수염이 돋는다
손마디 불뚝거리며 근육이 뭉친다
지금은 내 女性에 작별을 고할 때,
진화를 꿈꾸며 떠나는 낯익은 노변에
하얗게 화관을 쓴 메밀밭 여린 밑둥들
비둘기의 빨간 발로 종종대며 서있다
경계를 뛰어넘은 진화가 완벽하게 질서를 이루는 곳,
그 속으로 걸어들어가
이불호청 같은 노을 한 자락 끌어당긴다.
고경숙
자작나무 사이로 해가 지고 있다
아침이면 나무줄기에 힘차게 등을 치며
근육을 다지던 해는, 이 저녁
女性으로 지고 있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소진(消盡)한 몸 노을로 풀어져
붉은 이불호청 위에 나뭇잎새 몇 장
길을 따라 눕는다
저 해는 어제 졌던 해의 재기(再起)가 아니다
男性으로 태어나 女性으로 소멸하는
하룻날 兩性의 삶이다
고될 때마다 性을 맞바꾸며 진화했던
내 어버이의 아름다운 혼돈이다
자작나무 사이로 해가 지는 저녁이면
내 턱에 까칠한 수염이 돋는다
손마디 불뚝거리며 근육이 뭉친다
지금은 내 女性에 작별을 고할 때,
진화를 꿈꾸며 떠나는 낯익은 노변에
하얗게 화관을 쓴 메밀밭 여린 밑둥들
비둘기의 빨간 발로 종종대며 서있다
경계를 뛰어넘은 진화가 완벽하게 질서를 이루는 곳,
그 속으로 걸어들어가
이불호청 같은 노을 한 자락 끌어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