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담이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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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담이 있는 길

가을 0 1263
저자 : 고경숙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2003     출판사 :
붉은 벽돌담이 있는 길

고경숙


  햇살이 오래 버텨주는 봄날은 집짓기 딱 좋은 날이야. 기우뚱 받쳐놓은 사각의 체 위로 와르르 모래 한 삽 흘러내리면 나는 옷을 주워 입고 기다리지. 며칠을 노숙하느라 이슬 머금은 어깨를 그렇게 번쩍 들지마, 어지러워. 실선 잡아놓은 곳을 따라 엉덩이 펄쩍 뛰어 올라앉으면, 세상 뭐 이래?

  퍼즐처럼 꽉 들어찬 날들이 한 장 한 장 쌓아져 경계를 이루고 있는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할 몫은, 바람과 하늘과 별을 불러모으는 일. 깨진 병조각을 머리위에 꽂든, 장미덩쿨을 올리든 흙손이 어깨 두드려주며 하던 말 잊지는 않아. 어서 뛰어 올라와 봐. 네가 벽이라고 느끼던 것들이 여기선 가는 선일 뿐이야. 높게 쌓은 담장일수록 그 안에 허물어야 할 벽이 얼마나 많았는지 보여.

  때로 세상을 등지고 싶은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와. 유연한 몸짓으로 오줌발을 갈겨대거나 가로등의 영역을 벗어난 흐느낌으로 내게 기댈 때 그들은 모르고 있었어. 그들에게 기댄 채 나도 가끔은 위로 받고싶은 벽이라는 것을...  그런 날은 파스처럼 전단지를 덕지덕지 붙이고 욱신거리는 나를 지탱하지. 

  쉿! 누군가 한번쯤은 붉은 담장에 기대서서 진한 입맙춤을 나눌지도 몰라. 사랑? 바로 그거야. 수백 개의 디지털 카메라처럼 촘촘한 벽으로 고개 내밀고, 햇살 가득한 봄을 내다보는 이유...

  길 끝나는 곳이네.  그럼 이만 안녕!

            -월간 창조문예 2003.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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