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어
가을
0
1154
2006.03.26 15:13
저자 : 고경숙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송어
고 경 숙
아파치 전사처럼 붉은 띠를 두르고 나를 원할 때 간절한 산란의 욕망으로 꼬리가 잘려나간대도 두렵지 않았다 적당히 살찐 내 몸뚱이의 무게와 킬로 당 단가가 교묘히 맞아떨어졌다는 사실말고도 선택의 이유를 생각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망나니보다 더 날렵한 칼날, 시뻘건 피를 도마 가득 흘리며 나를 해방시켰다 주방 한 구석 허연 회벽에 걸린 조리사 자격증 연도가 가물거렸다 평소 온순한 주인이 피를 보자 웃었다 그의 이가 형광등에 푸르게 빛났다 역모였다 구역질을 참으며 행주 움켜쥐고 나 스스로 핏자국을 닦았다 그들이 꾸덕이는 살점을 요구하기 전에,
건너 산언덕 정선가는 길 단풍빛이 저리도 고왔었던가 양식장 수차가 돌아갈 때마다 12℃의 수온에 산소가 흠뻑 녹아들어 느긋하게 물 속을 유영하면 그는 몇 해간의 채란으로 늘어질 대로 늘어진 내 배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그의 여자들은 너그러운 그런 점을 좋아했다 사랑의 감정이 더할수록 나는 그를 독점하고 싶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시선 꽂은 채 순교하는 눈망울이 웃었다 아니 울었다 마지막 심문도 변론도 없었다 혓속에서 이미 이루어진 간교한 타협,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부천문학 39집-
고 경 숙
아파치 전사처럼 붉은 띠를 두르고 나를 원할 때 간절한 산란의 욕망으로 꼬리가 잘려나간대도 두렵지 않았다 적당히 살찐 내 몸뚱이의 무게와 킬로 당 단가가 교묘히 맞아떨어졌다는 사실말고도 선택의 이유를 생각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망나니보다 더 날렵한 칼날, 시뻘건 피를 도마 가득 흘리며 나를 해방시켰다 주방 한 구석 허연 회벽에 걸린 조리사 자격증 연도가 가물거렸다 평소 온순한 주인이 피를 보자 웃었다 그의 이가 형광등에 푸르게 빛났다 역모였다 구역질을 참으며 행주 움켜쥐고 나 스스로 핏자국을 닦았다 그들이 꾸덕이는 살점을 요구하기 전에,
건너 산언덕 정선가는 길 단풍빛이 저리도 고왔었던가 양식장 수차가 돌아갈 때마다 12℃의 수온에 산소가 흠뻑 녹아들어 느긋하게 물 속을 유영하면 그는 몇 해간의 채란으로 늘어질 대로 늘어진 내 배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그의 여자들은 너그러운 그런 점을 좋아했다 사랑의 감정이 더할수록 나는 그를 독점하고 싶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시선 꽂은 채 순교하는 눈망울이 웃었다 아니 울었다 마지막 심문도 변론도 없었다 혓속에서 이미 이루어진 간교한 타협,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부천문학 39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