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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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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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

가을 0 1136
저자 : 김언-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판다

              김  언
 

  판다는 팬더곰의 일종이지만 메마르고 쓸모없는 땅을 팔 때도 유용한 단어다. 그것은 깊이를 가지고 있고 적당히 윤기를 두를 수도 있으며 뙤약볕 아래 구릿빛으로 빛나는 신성한 노동을 뜻하기도 한다. 적당히 포장되는 만큼 올라가는 가격이 판다에는 이미 들어가 있다. 판다는 그래서 그것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제 자신의 뜻을 물건값으로 교묘히 위장하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에 현혹되는 사람이 간혹 학문에 매진하는 이유를 캐내어 물어보면 나온다는 대답이 늘 그 모양이다. "한권의 책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습니다. 아니면 어떤 사람이 여기로 나를 보내었을 테지요. 그는 위인입니다." 그가 잊어버린 것은 책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위인의 이름도 아니다. 그는 단어 하나를 망각하고 이름 그대로 매진해왔을 뿐이다. 그가 기댄 것은 학문이지만 학문 이전에 그를 사로잡았던 단어를 그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젊은 시절 그가 결심하였던 그 단어를. "저를 탓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 행위에 열중했을 뿐입니다." 붙잡혀온 사람들의 하나같은 변명이 그 단어에 매달리고 또 애걸하지만 그는 이미 충분히 상행위에 열중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잡상인의 얼굴과 대답이 빤한 노학자의 얼굴. 판다에 열중하는 얼굴과 판다를 까마득히 잊고도 여전히 매진하는 얼굴의 모양새. 희끗희끗한 그 머릿결이 또 잊어먹고 있는 장면은 맨 처음의 구릿빛 피부와 곡괭이 자루에 빛나는 저무는 태양의 굵은 땀방울 같지만 판다를 가로지르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 그걸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기껏해야 팬더곰의 일종이라는 그 단어를 무한히 파들어가는 사람의 얼굴. 얼핏 봐서는, 두더지의 일종;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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