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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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3 07:16
저자 : 김언-
시집명 : 숨쉬는 무덤
출판(발표)연도 : 2002
출판사 : 천년의시작
해바라기
김언
1.
오후 내내
그는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는 단지 햇볕 한 가닥을 잡아당기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오후 내내 그는 집요하게
사방으로 살을 뻗치는 태양과
맞대결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맞대결이 아니라
노력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도무지 태양이 끌려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차츰 그의 눈두덩이 부어올랐다
미친 사람이군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그를 지나갔다
2.
뜻대로 되지 않는 겨울이었어
녀석은 이월의
그구질구질한 비를 밟고 떠나갔다
곧 싱거운 봄이 녀석의 빈자리를 메꾸었지만
기억한다 그때
떠오르는 모든 것이 불량스럽다던
녀석의 마른 하늘엔 계절에 반항하여
자주 멍든 태양이 걸려 있었고
그때마다 구름은 갈비뼈처럼 부러졌다
3.
마침내 창 밖이 내려앉고 있었다
빌딩들이 앗아가버린 저녁을 지나
너무 멀리 떨어지던 별들을 지나
마지막으로 문밖을 서성이던
새벽을 지나
새들은 조울증의 날개짓을 해대었다
그땐 비겁하게 흐린 날씨였어
죽더라도 내 눈이 부어올랐어야 옳았어
나는 병든 우산을 하늘에다 꽂았다
4.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오후였다
그는 이번엔
태양을 연(鳶)날리고 있다고 말했다
때가 되면 그만 놓아 줄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정말
태양이 끌려 왔을까?
벌겋게 달아오른 그의 표정이 태양을 닮았다는 점
말고는 그 무엇도 증명되지 않았다
누군가 안경을 벗고 두 눈을 부벼댔다
오후 내내 해가 지고 있었다
김언
1.
오후 내내
그는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는 단지 햇볕 한 가닥을 잡아당기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오후 내내 그는 집요하게
사방으로 살을 뻗치는 태양과
맞대결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맞대결이 아니라
노력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도무지 태양이 끌려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차츰 그의 눈두덩이 부어올랐다
미친 사람이군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그를 지나갔다
2.
뜻대로 되지 않는 겨울이었어
녀석은 이월의
그구질구질한 비를 밟고 떠나갔다
곧 싱거운 봄이 녀석의 빈자리를 메꾸었지만
기억한다 그때
떠오르는 모든 것이 불량스럽다던
녀석의 마른 하늘엔 계절에 반항하여
자주 멍든 태양이 걸려 있었고
그때마다 구름은 갈비뼈처럼 부러졌다
3.
마침내 창 밖이 내려앉고 있었다
빌딩들이 앗아가버린 저녁을 지나
너무 멀리 떨어지던 별들을 지나
마지막으로 문밖을 서성이던
새벽을 지나
새들은 조울증의 날개짓을 해대었다
그땐 비겁하게 흐린 날씨였어
죽더라도 내 눈이 부어올랐어야 옳았어
나는 병든 우산을 하늘에다 꽂았다
4.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오후였다
그는 이번엔
태양을 연(鳶)날리고 있다고 말했다
때가 되면 그만 놓아 줄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정말
태양이 끌려 왔을까?
벌겋게 달아오른 그의 표정이 태양을 닮았다는 점
말고는 그 무엇도 증명되지 않았다
누군가 안경을 벗고 두 눈을 부벼댔다
오후 내내 해가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