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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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생각함

가을 0 1350
저자 : 김언-     시집명 : 숨쉬는 무덤
출판(발표)연도 : 2002     출판사 : 천년의시작
秀暎을 생각함

김언
 

선생, 아직도 런닝을 입고 계시군요
(그는 런닝이 아니라 런닝구라고 바로잡아주었다)
처음 뵙던 날이 생각납니다
一九五八年度 現代文學 六月號였을 겁니다
그때 선생은 새를 보여주셨지요
움직이는 悲哀라고 하셨던 기억도 납니다
(그는 새가 아니라 비라고 정정해주었다)
저는 움직이는 비애를 모릅니다
가라앉은 뿌리는 더더욱 모릅니다
30년은 실패하기에도 짧은 시간이었지요
바람이 불어도 혹 바람이 불어와도
여기는 어수선한 변방입니다
(그는 변방에서 변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면
뜻밖에도 아메리카가 나온다고 했다)
저를 괴롭게 만드는 건 선생의 그 말투입니다
선생이 말을 더듬는 이유가
생활에서도 말을 더듬는 이유가
한 가지도 제대로 말하기 힘든 이 나라에서
여러 가지도 말하기 싫은 것임을 잘 압니다
압니다만 움직이는 바다 한가운데
떠듬떠듬 철근을 박고
다리를 놓은 것 또한 선생이었습니다
그건 생활이겠지요 선생이 말을 더듬어야 하는
생활이겠지요(그는 자기가 자기의 시가
어떻게 사기치는지 유심히 지켜봐 달라고 했다)
선생이 선생의 시를 배신하는 것만큼
통쾌한 일도 없겠지요
선생의 시가 선생의 시를 가들떠보지 않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겠지요 없겠지만
한 달에서도 제가 깨끗한 날은 며칠이 안 됩니다
그런 날에도 태반은 바깥의 날씨를 모르는 날입니다
(그는 내가 모셔야 될 날은 따로 있다고 충고했다)
선생, 저는 시가 (안) 될 때 시를 씁니다
시가 (안) 될 때 시를 쓰고
전화는 하지 말고 편지도 쓰지 말고 시를 씁니다
시가 (안) 되겠다 싶을 때 사랑은 가고
어김없이 사랑은 가고 시는 씁니다
내일이 오늘로 도착하는 이 짧은 순간에도
사랑은 가고 어김없이 시는 씁니다만
(그는 이 무수한 반복이 좋다고 했다)
오늘을 멀리 보아야 하는 내 몸이 왜 아픈지
왜 아픈지 알면서도 왜 자꾸 병을 키우는지
선생은 모르고 내 시는 더더욱 모릅니다
(나는 용기를 달라고 했지 지혜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길어질수록 실패로 치닫는 내 시가
장시를 싫어하는 선생의 시가
오늘은 아무래도 용기를 배우는 날인가 봅니다
시가 (안)되는데도 전화를 걸고 편지를 쓰고
다시 시가 (안)되는 쪽으로 말을 겁니다
내일이 오늘로 도착하는 시간
종이가 부스러기가 되는 그 긴 시간 동안에도
선생은 선생의 시가 좀더 난해해질 것을 요구하고
저는 이 시가 선생을 추억하는 이 시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노려보고 있겠지요
(그는 10년 전 어느 참고서 지문에서
내 눈을 처음 보았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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