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갈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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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갈래의 길

저자 : 김기진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1923     출판사 :
한 갈래의 길

                김기진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을
나는 이 길을 더듬어왔다.
오랫동안을 이 가슴속의
다만 하나인 한 갈래 길을.

가슴속에서 울리어오는
느끼어 우는 가만한 소리……
아아,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을
업어가지고 온 나의 마음아!

어느 때부터
버러지들이 모여들어서
너의 몸 속에 집 지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 그러나 어느 날
섣달의 맵고 찬 바람
따뜻한 날 양지쪽으로
네 몸을 쪼이려고 나올 때에는
심술의 구름 날개를 펼치어
해를 감추어 버리었었다.―

아아, 불쌍한 나의 자식아
어느 때까지 가엾은 네가
따뜻한 빛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간단 말이냐……
너를 파먹는 버러지들이
너의 몸 속에 가득히 찰 땐
오오, 마음아! 너와 나와는
죽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오랫동안을 아무 말 없이
추움, 괴로움, 싸워가면서
벌레에게 파먹혀가면서
여기까지 더듬어왔다.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을
나는 이 길을 더듬을 터이다.
한량도 없는 이 가슴속의
한 갈래인 오직 이 길을.

<백조, 1923>
1 Comments
가을 2006.04.05 10:44  
시인은 스스로의 마음을 대상화하였다. 말하자면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너라고 부르면서 그가 불우하고 어두운 행로를 걷고 있는 것이 가슴 아파 위로하고 있다. 때묻지 않고 순정한 채로 유지되는 내면의 그 무엇은 주체적 실존의 근거라고 할 만한데, 시인은 그 실존의 근거가 오염되고 병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한 갈래의 길을 고집해 왔다고 시인은 단언한다. 그 한 갈래의 길은 그의 가슴속에 놓인 길이다. 그 가슴속에는 말없이 울고 있는 나의 마음이 있다. 나의 마음에는 벌레들이 집을 지어 속을 파먹고 있다. 마음은 따뜻한 햇살도 쬐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병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벌레로 가득 차게 되면 마음이나 그의 주인인 시의 화자마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만신창이가 된 마음의 현재 모습은 곧 내가 걸어온 인생의 험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기진하여 굳건한 실존의 근거는 망실되어 가지만 화자에게는 그와 같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나아가야 할 길이 있다. 화자는 그것을 `한 갈래인 오직 이 길'이라고 했다. [해설: 이희중]
제목 저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