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갈래의 길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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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5 10:40
저자 : 김기진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1923
출판사 :
한 갈래의 길
김기진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을
나는 이 길을 더듬어왔다.
오랫동안을 이 가슴속의
다만 하나인 한 갈래 길을.
가슴속에서 울리어오는
느끼어 우는 가만한 소리……
아아,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을
업어가지고 온 나의 마음아!
어느 때부터
버러지들이 모여들어서
너의 몸 속에 집 지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 그러나 어느 날
섣달의 맵고 찬 바람
따뜻한 날 양지쪽으로
네 몸을 쪼이려고 나올 때에는
심술의 구름 날개를 펼치어
해를 감추어 버리었었다.―
아아, 불쌍한 나의 자식아
어느 때까지 가엾은 네가
따뜻한 빛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간단 말이냐……
너를 파먹는 버러지들이
너의 몸 속에 가득히 찰 땐
오오, 마음아! 너와 나와는
죽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오랫동안을 아무 말 없이
추움, 괴로움, 싸워가면서
벌레에게 파먹혀가면서
여기까지 더듬어왔다.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을
나는 이 길을 더듬을 터이다.
한량도 없는 이 가슴속의
한 갈래인 오직 이 길을.
<백조, 1923>
김기진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을
나는 이 길을 더듬어왔다.
오랫동안을 이 가슴속의
다만 하나인 한 갈래 길을.
가슴속에서 울리어오는
느끼어 우는 가만한 소리……
아아,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을
업어가지고 온 나의 마음아!
어느 때부터
버러지들이 모여들어서
너의 몸 속에 집 지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 그러나 어느 날
섣달의 맵고 찬 바람
따뜻한 날 양지쪽으로
네 몸을 쪼이려고 나올 때에는
심술의 구름 날개를 펼치어
해를 감추어 버리었었다.―
아아, 불쌍한 나의 자식아
어느 때까지 가엾은 네가
따뜻한 빛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간단 말이냐……
너를 파먹는 버러지들이
너의 몸 속에 가득히 찰 땐
오오, 마음아! 너와 나와는
죽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오랫동안을 아무 말 없이
추움, 괴로움, 싸워가면서
벌레에게 파먹혀가면서
여기까지 더듬어왔다.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을
나는 이 길을 더듬을 터이다.
한량도 없는 이 가슴속의
한 갈래인 오직 이 길을.
<백조,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