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강무정(浿江無情)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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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0
2006.04.22 12:21
저자 : 조지훈
시집명 : 역사 앞에서
출판(발표)연도 : 1959
출판사 : 신구문화사
패강무정(浿江無情)
조 지 훈
평양(平壤)을 찾아 와도 평양성엔 사람이 없다.
대동강 언덕길에는 왕닷새 베치마 적삼에 소식(蘇式) 장총을 메고 잡혀 오는 여자 빨치산이 하나.
스탈린 거리 잎 지는 가로수 밑에 앉아 외로운 나그네처럼 갈 곳이 없다.
십년 전 옛날 평원선(平元線) 철로 닦을 무렵, 내 원산(元山)에서 길 떠나 양덕(陽德) 순천(順川)을 거쳐 걸어서 평양에 왔더니라.
주머니에 남은 돈은 단돈 십이 전(十二錢), 냉면 쟁반 한 그릇 못 먹고 쓸쓸히 웃으며 떠났더니라.
돈 없이는 다시 안 오리라던 그 평양을 오늘에 또 내가 왔다 평양을, 내 왜 왔노.
대동문(大同門) 다락에 올라 흐르는 물을 본다. 패강 무정(浿江無情) 십 년 뒤 오늘! 아, 가는 자 이 같고나, 서울 최후의 날이 이 같았음이여!
조 지 훈
평양(平壤)을 찾아 와도 평양성엔 사람이 없다.
대동강 언덕길에는 왕닷새 베치마 적삼에 소식(蘇式) 장총을 메고 잡혀 오는 여자 빨치산이 하나.
스탈린 거리 잎 지는 가로수 밑에 앉아 외로운 나그네처럼 갈 곳이 없다.
십년 전 옛날 평원선(平元線) 철로 닦을 무렵, 내 원산(元山)에서 길 떠나 양덕(陽德) 순천(順川)을 거쳐 걸어서 평양에 왔더니라.
주머니에 남은 돈은 단돈 십이 전(十二錢), 냉면 쟁반 한 그릇 못 먹고 쓸쓸히 웃으며 떠났더니라.
돈 없이는 다시 안 오리라던 그 평양을 오늘에 또 내가 왔다 평양을, 내 왜 왔노.
대동문(大同門) 다락에 올라 흐르는 물을 본다. 패강 무정(浿江無情) 십 년 뒤 오늘! 아, 가는 자 이 같고나, 서울 최후의 날이 이 같았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