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강무정(浿江無情)

홈 > 시 백과 > 시인의 시
시인의 시
 
* 특정 종교나 정치.사상, 이념에 치우친 작품과 다수 회원이 삭제를 요청하는 글은 양해없이 삭제되거나 개인게시판으로 옮겨집니다.
* 저자난에는 이름만 사용해야 하며, 별명이나 아호 등을 사용해 등록자 이름과 저자(시인)의 이름이 달라지면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 모두를 위하여 한 번에 많은 작품을 연속해서 올리는 것은 지양하시길 부탁드립니다.
* 목록의 등록자 이름에 마우스를 놓고 클릭하시면 해당 등록자가 올린 작품을 한번에 조회할 수 있습니다. 
* 검색시에는 리스트 하단 <다음검색>버튼으로 나머지 검색 결과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패강무정(浿江無情)

가을 1 2570
저자 : 조지훈     시집명 : 역사 앞에서
출판(발표)연도 : 1959     출판사 : 신구문화사
패강무정(浿江無情)

                        조 지 훈



  평양(平壤)을 찾아 와도 평양성엔 사람이 없다.

  대동강 언덕길에는 왕닷새 베치마 적삼에 소식(蘇式) 장총을 메고 잡혀 오는 여자 빨치산이 하나.

  스탈린 거리 잎 지는 가로수 밑에 앉아 외로운 나그네처럼 갈 곳이 없다.

  십년 전 옛날 평원선(平元線) 철로 닦을 무렵, 내 원산(元山)에서 길 떠나 양덕(陽德) 순천(順川)을 거쳐 걸어서 평양에 왔더니라.

  주머니에 남은 돈은 단돈 십이 전(十二錢), 냉면 쟁반 한 그릇 못 먹고 쓸쓸히 웃으며 떠났더니라.

  돈 없이는 다시 안 오리라던 그 평양을 오늘에 또 내가 왔다 평양을, 내 왜 왔노.

  대동문(大同門) 다락에 올라 흐르는 물을 본다. 패강 무정(浿江無情) 십 년 뒤 오늘! 아, 가는 자 이 같고나, 서울 최후의 날이 이 같았음이여!
1 Comments
가을 2006.04.22 12:22  
시어 및 시상 전개
 
소식(蘇式) : 소련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6·25 당시 국군에 의해 탈환된 평양에 입성해서 폐허화된 도시의 모습을 보고 전쟁의 참혹상과 민족의 비극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시는 전쟁의 의미 추구나 이데올로기의 우열(優劣)을 주장하는 격한 감정의 전쟁시가 아니기에 시인은 의도적으로 행 구분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 연을 긴 행 하나로 처리함으로써 전쟁을 바라보는 화자의 허망한 마음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이 작품은 내용상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1∼3연의 첫째 단락은 미군의 공중 폭격으로 인해 온통 폐허화되어 을씨년스러워진 평양 거리의 풍경을 '사람이 없다' 는 구절로 요약,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때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잡혀 오는 한 여자 빨치산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렇듯 황량한 폐허 속에서 화자는, 북한이 소위 '스탈린 거리'로 명명한 거리에 웅크리고 앉아 시나브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외로운 나그네와 같은 수심에 빠져들고  있다.
4∼5연의 둘째 단락에서는 화자가 십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원산에서 평양까지 걸어서 왔던 기억과, 돈이 없어 그 유명한 평양 냉면 한 그릇 사먹지 못하고, 쓸쓸히 웃으며 평양을 떠났던 일을 떠올리고 있다. 볼 것 많고 먹을 것 많은 이 곳 평양에 '돈 없이는 다시 안 오리라'는 다짐을 하며 떠났던 그 옛 추억에서 현실로 돌아온 화자는 6∼7연의 셋째 단락에서 전쟁으로 인해 잿더미가 된 이 곳을 왜 찾아왔던가 하고 뉘우친다. 차라리 이 곳을 찾아 오지 않았더라면, 비록 십년 전의 그 즐겁지 않은 추억이나마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편이 훨씬 더 아름답고 정겨웠을 것일텐데 하는 후회스러운 마음으로 대동문 다락에 오른 화자는 마침내 그 곳에서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발견하고 패강(浿江), 즉 대동강의 무정(無情)함을 탄식한다. '아, 가는 자 이 같고나'라는 말은 공자(孔子)가 사물의 그침 없는 변화를 일러 한 말로서 이 작품에서는 전쟁의 비극과 덧없음을 자연의 의구함에 대비시켜 강조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공자께서 강변에서 이렇게 탄식하였다. '가는 자는 이와 같을까? 주야로 흘러 쉬임이 없구나!'
({論語}, [子罕篇])
제목 저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