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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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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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

가을 0 1372
저자 : 박공수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2006     출판사 :
속세와 불사의 중간쯤에
외롭게 서 있는 수덕여관.
시간의 밑동은 간 곳 없고
빗장 걸어 입 다물고 말이 없다.

죽어도 못 잊겠지요 만
사랑도 미움도 잊어버리자고
인연도 혈연도 모두 잊자고
꿈이었다고

꿈속의 꿈이었다고
기다림 접어버리고 흔적도 지워버리고
쌓인 기억
솜먼지로 덮어주며 잠재우고
바람으로 침묵으로만 속을 꾹꾹 채워
너럭바위 친구 삼아 박제가 되어
속세에도 불가에도 미련 없다고
코앞의 행길만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하지만 가끔
낙엽 한 잎 날아와 마당을 뒹굴다가
회오리바람 타고 편주되어 사라지면
일엽(一葉)의 생각이 아니 날 수 있겠는가.

만공(滿空)한 달빛이
꽁꽁 언 태신의 손처럼 뻗치어
혜석의 젖무덤 같은 초즙(草葺)을 더듬으면
모정에 굶주렸던 어린 태신을 어찌 잊으리오.


더더구나 고암이
몽중에나 그렸을법한 너럭바위 암각화가
씌인 달빛에 더욱 선명히
기다림밖에 몰랐던 여인의 고운자태로 일어나
깨이지 않을 몽유병을 앓는 것처럼
살풀이가락으로 춤을 추어대며
잠자는 기억들에 옷깃을 스쳐대는 데야.




*만공(滿空) : 1871~1946 근대의 고승, 본관은 여산, 법명은 월면(月面), 만공은 법호
*일엽(一葉) : 1896~1971 여성 문학가,
                      신시의 효시로 알려진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1년 앞선 "동생의 죽음"이라는 시를 써서 사실상의 우리나라
                      신시의 지평을 연다. 만공 선사의 문하로 들어가 여승이 됨.
*나혜석    : 1896~1948 한국최초의 페미니즘화가, 수덕사에 있던 만공선사로부터
                      중이 되는 것을 거절당하자 수덕여관에서 5년 간 1인 시위.
                      1937~1943까지 수덕여관에서 작품활동. 일엽의 아들을 자기 자식처럼 돌봄.
*김태신(훗날 일당스님) 일엽의 아들. 어머니를 보고싶어 현해탄을 건너 왔으나 어머니
                      일엽으로부터 냉대를 받음. 혜석이 아들처럼 돌보아 줌. 1988 출가.
*이응로(고암)1904~1989 화가, 나혜석의 1인 시위 때 수덕사에 드나들기 시작. 1944년 수덕여관
                      인수 후 부인에게 여관을 맡기고 연인(후배여류화가 박인경)과 함께 파리로
                      가 버림. 1967년 불거진 동백림 사건으로 잡혀와 2년 간 옥고를 치름.
*박귀희(고암의 본부인) 홀로 수덕여관을 운영. 고암이 옥고를 치른 후 몸을 추스르기 위해 두 달간
                      수덕여관에 머무를 때 그 뒷바라지를 함. 2001년 2월 세상을 떠남.
                      수덕여관이 문을 닫음.
*암각화: 고암이 옥고를 치른 후 두 달간 수덕여관에 머무르며
        수덕여관 마당에 있는 너럭바위의 옆면을 파서 새겨놓은 문자 추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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