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설날 아침에' 외 8편의 시

홈 > 시 사랑 > 추천시
추천시
 
여러분의 애송시로 꾸미는 공간입니다.

<새해맞이 시모음> 김종길의 '설날 아침에' 외 8편의 시

정연복 0 10249
<새해맞이 시모음>    김종길의 '설날 아침에' 외 8편의 시

+ 설날 아침에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김종길)
 
+ 무지개 빛깔의 새해 엽서

빨강 ― 그 눈부신 열정의 빛깔로
새해에는
나의 가족, 친지, 이웃들을
더욱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느님과 자연과 주변의 사물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겠습니다
결점이 많아 마음에 안 드는 나 자신을
올바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렵니다

주황 ― 그 타오르는 환희의 빛깔로
새해에는
내게 오는 시간들을 성실하게 관리하고
내가 맡은 일들에는
인내와 정성과 책임을 다해
알찬 열매 맺도록 힘쓰겠습니다

노랑 ― 그 부드러운 평화의 빛깔로
새해에는
누구에게나 밝고 따스한 말씨
친절하고 온유한 말씨를 씀으로써
듣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
지혜로운 매일을 가꾸어가겠습니다

초록 ― 그 싱그러운 생명의 빛깔로
새해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힘들게 하더라도
절망의 늪으로 빠지지 않고
초록빛 물감을 풀어 희망을 짜는
희망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파랑 ― 그 열려 있는 바다빛으로
새해에는
더욱 푸른 꿈과 소망을 키우고
이상을 넓혀가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삶의 바다를 힘차게 항해하는
부지런한 순례자가 되겠습니다

남색 ― 그 마르지 않는 잉크빛으로
새해에는
가슴 깊이 묻어둔 사랑의 말을 꺼내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색의 뜰을 풍요롭게 가꾸는
창조적인 기쁨을 누리겠습니다

보라 ― 그 은은한 신비의 빛깔로
새해에는
잃어버렸던 기도의 말을 다시 찾아
고운 설빔으로 차려입고
하루의 일과를 깊이 반성할 줄 알며
감사로 마무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이에게 거듭 강요하기보다는
조용한 실천으로 먼저 깨어 있는
침묵의 사람이 되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무지개 빛깔로
새로운 결심을 꽃피우며
또 한 해의 길을
우리 함께 떠나기로 해요
(이해인)


+ 나의 소망

정결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리라
그렇게 맞이한 이 해에는
남을 미워하지 않고
하늘같이 신뢰하며
욕심 없이 사랑하리라

소망은
갖는 사람에겐 복이 되고
버리는 사람에겐
화가 오느니
우리 모두 소망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후회로운 삶을 살지 않고
언제나 광명 안에서
남을 섬기는 이치를
배우며 살아간다.

선한 도덕과
착한 윤리를 위하여
이 해에는 최선을 다하리라.

밝음과 맑음을
항상 생활 속에 두라
이것을 새해의 지표로 하리라.
(황금찬)

+ 작은 지붕 위에

작은 지붕 위에 내리는 것은 눈이고
작은 창틀 속에 내리는 것은 눈이고
작은 장독대에 내리는 것도 눈이고
눈 눈 눈 하얀 눈
눈은 작은 나뭇가지에도 내리고
눈은 작은 오솔길에도 내리고
눈은 작은 징검다리에도 내리고
새해 새날의 눈은
하늘 가득히 내리고
세상 가득히 내리고
나는 뭔가 할 말이 있을 것만 같고
어디론가 가야 할 곳이 있을 것만 같고
한 사람 만날 사람이 있을 것만 같고
장갑을 벗고 꼭 꼭 마주 잡아야 하는
그 손이 있을 것만 같고
(전봉건)

+ 신년시

새해에는 흐르는 강 흐르게 하고요
우리들 고개 들어 먼 산 바라 봐야죠
햇살 따사로운 들녁
침묵의 걸음걸이로 다가가
떼굴떼굴 이슬처럼 풀잎 위에
누우면 어때요

새해에는 날리는 바람 날리게 두고요
우리들 야윈 손 꼭 잡으면 어때요
우리들 힘찬 발걸음 모으면 어때요
(김영환)

+ 새해 인사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굴러라.

건너 뛰듯
건너 뛰듯
오늘과 또 내일 사이를 뛰어라.

새옷 입고
아니, 헌옷이라도 빨아 입고,
널뛰듯
널뛰듯
이쪽과 저쪽
오늘과 내일의 리듬 사이를
발굴러라 발굴러라.
춤추어라 춤추어라.
(김현승)

+ 새해 새 아침은

새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았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렸다.

보라
발 밑에 널려진 골짜기
저 높은 억만 개의 산봉우리마다
빛나는
눈부신 태양
새해엔
한반도 허리에서
철조망 지뢰들도
씻겨갔으면,

새해엔
아내랑 꼬마아이들 손 이끌고
나도 그 깊은 우주의 바다에 빠져
달나라나 한 바퀴
돌아와 봤으면,

허나
새해 새 아침은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오지 않는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안창
영원으로 가는 수도자의 눈빛 속에서
구슬짓는다.
(신동엽)

+ 새해의 작은 소망

억만금(億萬金) 보석보다
소중한 하루

그 눈부신 은총의 날을
하늘은 올해도

삼 백 예순 다섯 개나
선물로 주셨다

나, 아직은 많이 서툰
인생의 화가이지만

그 하루하루의
매 순간을

사랑과 기쁨과 행복의
곱고 순수한 색깔로

예쁘게 보람있게
채색하고 싶다
(정연복)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