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옷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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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옷 /최한나

최한나 0 586
아픈 옷
최한나

세상에서 제일 아픈 옷은
상복이거나 환자복
상복은 며칠 지나면 벗을 수 있고
환자복은 모아서 세탁하면
말끔한 새 옷이 된다

맨몸이란
내 몸에 딱 맞는 옷이다
아픈 옷을 입으면 아픈 몸이 된다
늑골 밑, 지네 한 마리 지나간
수선 치고는 조악한 솜씨다
이 옷을 입고는 어딜 나갈 수 없다

수선자국으로 무엇이 나왔을까
밤마다 칭얼거리던 그 아이일까
짜내면 주루룩 눈물 쏟아질 하얀 솜뭉치일까
어쩌면 미아가 된 별 하나
쑥 꺼낸 자국일수도 있겠다

아픈 옷이 침대에서 일어난다
다시 거울에 비춰보는 찢어진 옷
건드리면 눈꼬리에 베일 것만 같다
아려오는 바늘자국을 한 손이 감싼다

한 번 찢어진 옷은 늘
조심조심 입어야할 옷,
그 동안 입었던 옷들이
얼마나 온순했는지를 알 것 같다

최한나 시집 [꽃은 떨어질 때 웃는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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