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성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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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성인식

[초록의 성인식]

어느 날 산에 올라가니, 산 전체가 선명한 녹색으로 변해 녹색 천지가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녹음이 우거진 것이다. 코로나다 뭐다 난리를 쳐도 결국 세월은 가고, 자연은 때맞춰 성장하고 스스로 변해간다.

초봄에만 해도 파릇파릇 돋아나던 새싹들이었는데 저도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라며 녹음이라 불러달란다. 생각해보니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추위와 암흑 속에서 오랜 세월을 견디다 마침내 올해 봄, 딱딱한 껍질을 깨고 여리디 여린 초록잎을 세상에 내밀었을 것이다.

그런데 잔뜩 기대를 품고 나온 새로운 세상은 밝고 촉촉하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모호한 먼지투성이에, 세찬 비바람이 불고 싹을 갉아먹는 곤충과 새들뿐 아니라, 무수히 많은 포식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세상이 어떤 색인지 자신이 어떤 색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초록이 성장하는 것은 비와 모래바람을 맞고 뜨거운 햇빛을 삼켜 신선한 공기를 토해 내고 곤충과 새 같은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었고, 그 과정을 통해 초록은 성장하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크다 뜨거운 햇살 비치는 어느 날 시원하게 부는 바람에 자신을 내려다보니 어느새 색이 변해 있었다. 초록은 그렇게 성인이 된 것이다. 이제 그는 홀로 폭염에 맞서고 당당히 태풍을 이겨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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