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떠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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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편지

그대 떠나도

[그대 떠나도]

올해는 좀 이르다. 꽃이 열흘 이상 일찍 피더니 꽃도 빨리 지고, 오월이 되니 바로 여름이 된 것처럼 덥다. 그 포근하던 봄기운과 봄바람, 화려한 자태의 꽃들과 그윽한 꽃향기가 어느덧 사라지고, 벌써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한다.

어차피 떠나야 할 것이란 걸, 결국엔 보내야 할 것이란 것을 알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하였기에, 조금 더 빨리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토록 짧고 아름답고 황홀하던 꿈결 같은 계절이여!

그대 떠난 세상에는 지옥불처럼 뜨거운 계절이 나를 익혀버릴 듯 덮쳤고, 뒤이어 무시무시한 태풍이 홀로 남은 나를 날려버릴 듯 윽박질렀고, 연약한 나를 얼려 깨뜨려버릴 듯한 혹한의 계절이 나를 괴롭혔다.

그 엄청난 계절들을 다 이겨내고 내가 다시 이 자리에서 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돌이켜보면, 그대가 남기고 간 흔적들 때문이었다. 그대는 마치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자국을 남기고, 내 영혼에 영원히 감돌 숨결을 남겨 두었으니.

그대 떠나도 매년 다시 봄이 찾아왔고, 화사한 그대의 미소 같은 아름다운 꽃이 피었고, 뜨거운 무더위 속에서도 열매를 맺더니, 무시무시한 태풍 속에서도 열매를 익혀 씨를 뿌리고, 혹한의 계절을 이겨내고 다시 싹을 틔우니, 그대는 내게 영원한 봄으로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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