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들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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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들기 좋은 날

[감기 들기 좋은 날]

감기는 날이 춥다고 해서 걸리는 것이 아니라 큰 일교차에 몸이 적응을 잘 못할 때 많이 걸린다. 내가 몸이 건강한 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감기에 걸리지 않은 것이 벌써 10년 정도 되어 가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의료체계의 선진화로 의료비용이 적게 드니 사람들이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고 약한 감기 기운만 있으면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받으니 항생제 내성균이 발생하기도 할 정도지만 나는 웬만한 감기엔 절대 병원에 가지 않는다. 오히려 병원에 안가고 감기를 이겨내고 나면 그해엔 절대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오늘은 평소보다 날이 부쩍 추워졌다. 그래서 잠바를 하나 더 걸쳤는데도 밖으로 나서니 좀 춥다. 오늘따라 바람도 조금 세졌는지 둥글게 말린 활엽수 나뭇잎들이 쇳소리를 내면서 굴러다니며 가을을 스산하게 만든다.

그 옛날 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젊은 날 가을에도 반팔만 입고 학교 잔디밭에서 잠을 잘 정도로 추위를 안 탔기에 내가 그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내 잠바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우린 행복했다.

앞으로 날이 얼마나 더 추워질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들 흔하디흔한 오리털 파카로 중무장하더라도 누군가는 내 싸구려 잠바의 따스함을 기억해 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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