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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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무상

[세월무상]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세월이 너무 잘 간다. 젊을 때나 지금이나 세월의 속도는 매 한 가지일 텐데 지금이 더 빠르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어릴 적에는 나이를 먹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면 지금은 더 늙기 싫고 더 늙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1년이란 세월은 날수로 따지면 365일에 시간으로 따지면 엄청 긴 시간이지만 매년 가을만 되면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왜 이리 허전한지. 매달 찢어내는 사무실 달력이 이젠 몇 장 남지 않았지만, 이번 달을 찢어내는데 저도 찢겨나가기 싫은지 예전처럼 깔끔하게 찢어지지 않고 남은 달까지 끌고 나온다.

작년까지만 해도 검은 머리가 더 많다고 자부했었는데 이제는 장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마음 한구석엔 나도 아직 젊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내 마음은 아직 이팔청춘 못지않은데 세상일은 마음 같지가 않다.

그래도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매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에 그다지 변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조금씩 몸통이 굵어지고 있다. 올해 더 거세진 태풍을 또 견디어 냈으니 속은 더 들어찼고 뿌리와 몸통은 더 옹골차게 강해졌을 것이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인생이 몇 해 살다 말 것도 아니고 나에게 남은 달력이 아직 수십 권은 될 터, 내가 피울 꽃은, 굳이 내년이 아니더라도 내 달력에 꽃 피울 날이 없더라도, 무수히 많은 씨앗을 뿌리고 있음이니, 오히려 씨앗을 틔울 줄 모르는 세상이 무심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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