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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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거처

청춘 0 1063
류인채의 시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서 바쁘게 움직이는 예민한 촉각이다. 지형을 넓히면서 분주하게 빛과 소리와 어둠을 장악하며 나아가는 그의 시는, 끝없는 미지의 꽃밭에다 향기로운 새싹들을 피워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그의 풍경 속에 떠오른 대상이면 불철주야 파고드는 그의 시적 모험과 열기에 취해 ‘사물이 지닌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응애// 열 달 동안 여문 생각이 터진다/ 물컹한 비린 것이/ 저절로 밤송이를 벗어나/ 바닥을 친다// 응애// 참았다 내지르는 뜨거운 말이/ 지표에 번진다// 첫 숨에/ 천지가 열린다” 이렇듯, 고통 속에 찬란한 함성처럼 터지는 「응애」는 류인채 시가 지닌 미학적 관심과 표현기법들을 여지없이 드러내어 준다. ‘응애’라는 함축된 말이 지니고 있을 설렘이 이토록 절박하고 진실 되게 표현된 적이 있었는가? 라는 데에서, 그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 이수익(시인)

류인채 시인은 찰나를 환하게 시로 들어올리고 있다. 가령 “무지갯빛 꿩의 깃털이 바작에 사뿐 내려앉았다/ 문득 청보라 빛 하늘이 열리고/ 아버지의 등 뒤로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져나갔다”라는 구절이다. 어느 날 꽃 한 단을 꺾어 지게에 지고 산을 내려오는 아버지의 등 뒤로 무지갯빛 장끼가 날아오르고, 장끼의 깃털 하나가 사뿐 바지게에 내려앉고, 청보라 빛 하늘이 열리고, 아버지의 등 뒤로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져나가고, 하는 몇 가지의 일은 사실 불과 수 초 사이, 그야말로 찰나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속에서 눈부신 빛을 보는 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하나님”이라 표현한다. 그때 그의 일차적인 속뜻은 ‘꽃 한 단=하나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그 순간 장끼가 떨어뜨린 깃털 하나도, 꽃 한 단이 실려 있는 바작도, 모두 눈부신 빛이요 하나님이라고 읽을지 모른다. 그것이 이 시를 빛나게 하는 ‘찰나’의 말이다. 이런 찰나는 독자에게 마치 천국을 보는 것 같은 행복감을 안겨준다.
- 이경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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