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규 시집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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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규 시집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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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규 첫 시집-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출판사-천년의 시작(2002년)

[저자 : 김충규]
1965년 음력 11월 1일, 경남 진양군 명석면 남성이라는 오지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마을이 수몰지구가 되어 진주시로 이주하여 십대 후반을 보냈다. 1986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스승 최하림, 오규원 시인을 만나 시를 배웠다. 졸업 이후 자유기고가로 생활하며 닥치는 대로 여러 장르의 글을 썼으나, 정작 시는 못쓰고 지낸 세월이었다. 1996년 시의 길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며 다시 습작을 시작했다. 1997년 제1회 경기 신인문학상을 받았고, 1998년 <문학동네> 하계공모에 「낙타」 등의 시를 응모하여 심사위원 최승차, 이문재, 안도현 시인으로부터 "독자를 끌어당기는 흡인력을 발휘했다"는 평을 얻으며 당선, 본격적인 시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 책속으로 ]

*우는 꽃을 따먹었다

꽃의 그늘 아래서
나, 흥건하게 젖었다
꽃 향기에 취해
꽃 그늘 속으로 들어왔는데
꽃이 그만 흥건한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내가 세계의
거대한 그늘 속에서 울었듯이!

우는 꽃을 따먹었다
꽃은 내 속에 들어와서도 울었다
울음이 터질 때
나는 누구 속으로 들어가
울 수가 있을까
대체 그 누가 제 가슴속을
비워 주기나 할까

울음을 그치지 않는 꽃을
다 따먹고
나는 그늘 아래 누워 있었다
꽃나무는 앙상한 뼈를 드러내고 있었다
내 속의 꽃들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 꽃들을,
내가 제대로 소화시킬 수 있을까
--- p.91-92




방금 수면 위로 뛰어오른 물고기가 물고 간
달빛, 그러나 달빛은 물고기의 몸 속에서 소화되지 않고
배설물과 함께 강 밑바닥에 쌓일 것이니
그렇게 쌓인 달빛들 수북할 것이니
비오는 밤이거나 달뜨지 않는 밤이 와도
강은 제 속에 쌓인 달빛들로 환해지리
그 환함으로 물고기들 더듬지 않고도 길을 가리니
내 한 줌 강물을 마신다 내 몸 속도 환해져서
캄캄함의 세월이 와도 더듬지 않을지니
신발을 벗어놓고 정중히 강을 경배함이
어찌 사람의 할 일이 아니라 하겠는가

 
[ 출판사 리뷰 ]

타락과 부패와 죽음의 그림자가 흥건히 드리워진 문명의 폐허를 건너가기 위하여 그는 '낙타'라는 이미지를 가져온다. 발목이 푹푹 빠지는 문명의 모래 사막을 건너가기 위하여 낙타 한 마리를 몸 속에 키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낙타'는 도시 문명 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의 힘겨운 자화상이다. 사막 속에 깊숙이 숨겨진 오아시스를 생각하며 그 뜨겁고 건조한 하나의 세계를 통과해 나가는 고행의 수도승을 연상시킨다. 불사의 사막에서 밤마다 실존적 고통에 허우적대며 깨어있는 자의 힘겨운 자화상이다.

김충규의 시에는 도처에 죽음이 깔려 있다. 개인적인 체험이 강하게 베어있는 시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단면을 드러낸 도시를 배경으로 한 시에서도 음산한 죽음이 부패한 냄새를 풍기며 널려져 있다. 심지어 숲을 노래한 시에서도 죽은 이들의 하얀 뼈가 쌓여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2000년에서 2001년까지 시인은 심한 객혈로 시작된 폐결핵을 앓았다. 폐결핵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가 시인으로 하여금 첫 시집을 '죽음'에 관한 시편들로만 묶게 한 계기가 되었다.

김충규의 시들은 피를 흘리면서도 움직임이 별로 없고 소리도 없다.겨울 언덕에서 새빨갛게 타오르는 바자울과도 같이 그의 시들은 눈부신 내실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외화가 없다. 고치 속의 유충 같다. 그의 '낙타'나 '저수지''겨울숲 우화'들은 유충처럼 정지되어 있는 듯한 시간을 산다. 이것이 김충규의 현실세계이며 시세계다.

[추천글-최하림]
나는 그를 80년대 중엽부터 안다. 그는 서두르는 시인이 아니다. 그는 시를 끈질기게 기다릴 줄 알며 침묵의 무게를 계량할 줄 안다. 그의 시들이 유충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은 침묵을 계량하고 있는 순간이라고 보면 된다. 마침내 그가 침묵을 그치고 날아오르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불기둥이 되어 타오르는 그를 보게 될 것이고, 광휘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시집은 광휘의 예감과 정조를 보여주는 시집에 속할 것이다.

 
[ 미디어 리뷰-한국일보 편집위원 고종석]
공감각적 언어에 삶 버무려

김충규씨의 시집『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천년의 시작 발행)를 읽다가 ‘꽃 냄새가 있는 밤’이라는 시를 만났다. 들큼한 언어에 시큼한 삶이 버무려져 있다.

“어디서 꽃이 피는가/ 치약냄새보다 환한 꽃 냄새로/ 누웠던 밤이 벌떡 일어선다/ 제 울음소리에 놀란 고양이가/ 그림자를 버리고/ 이 지붕에서 저 지붕으로 넘어가고 있다.” 모두 잠든 밤이다. 그런데 어디서 짙은 꽃 향기가 난다. 그 화향(花香)을 화자는 ‘치약냄새보다 환하’다고 말한다. 치약냄새는 치약 빛깔처럼 환하다. 이 공감각(共感覺)은 고스란히 꽃 냄새로 이월된다. 잠들었던 밤을 그 환한 꽃 향기가 일으켜 세운다. 꽃 냄새는 치약처럼 환하고 싸한 각성제다. 깨어난 밤은 꽃 향기로 환하다.

“달빛을 넘기며/ 잠이 오지 않아 나는 옥상에서/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우리 집에 없는 꽃이/ 우리 집으로 꽃 냄새를 퍼뜨리고 있다/ 꽃 냄새가 잠으로 가는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잠을 이루지 못한 화자는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그는 꽃 향기에 잠이 깬 것이 아니라, 잠을 이루지 못해 옥상에 나왔다가 달빛과 함께 퍼져 나오는 꽃 향기를 맡는다. 그는 옥탑방에 사는지도 모른다.

시의 화자 곧 서정적 주체가 시인과 늘 겹치는 것은 아니지만, 오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시의 화자를 시인으로 간주해보자. 시집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에 실린 다른 시 ‘달’에서 유추해보면, 시인에게 달은 바닥을 드러낸 우물이고 폐허의 공간이다. 그가 달을 보는 까닭은 달의 폐허가 그의 폐허를 읽기 때문이다. 그는 이루지 못할 꿈이 너무 많아 차마 지상을 예찬하지 못한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옥상에서 달빛을 받으며 세상을 굽어보는 ‘꽃 냄새가 있는 밤’의 화자-시인에게도 삶은 막막한 폐허일 수 있다. 그런데 꽃 냄새가 그를 잠으로 유혹한다.

“내 속으로 들어와 주무세요, 하고/ 꽃의 손길이 다가와서 유혹하는 밤이다.” 시의 도입부에서 각성제였던 꽃 향기는 이제 반대로 수면제, 몽혼제가 된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때론 생을/ 무언가에 취하게 하고 싶다/ 그 기회에 생의 길을 바꾸어도 좋으리라.” 술이나 약물처럼 꽃 향기도 일종의 마취제다. 시인은 그 화향에 생을 취하게 하고 싶어한다. 그는 ‘무언가에 취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고 ‘생을/ 무언가에 취하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과 생 사이에 의식적으로 거리를 둘 만큼 그는 자신의 생에 몰입하지 못한다. 그는 생의 길이 바뀌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마침내 눈이 풀린 시인이 말한다. “이 밤,/ 꽃의 남편이 되어/ 꽃의 품속에서 하룻밤/ 푹 자고 싶다.” 새롭게 떠오른 태양 아래서 화자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꽃 냄새에 취해 자고 싶어하는 화자는 백 수십 년 전 “이제 취할 시간이에요! 시간에게 학대 당하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세요”라고 노래했던 보들레르의 후예다.

--- 한국일보 고종석 편집위원 (2002년 9월 11일 수요일)

[ 독자 리뷰-예스24]
가슴을 아프게 파고드는 시편들!

그의 시는 읽는 자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든다. 파고들 뿐만 아니라 전율의 웅덩이를 만든다. 읽는 자로 하여금 그 웅덩이를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생애를 뒤돌아보게 하는 미묘한 힘이 있다. 그가 등단작인 <낙타>를 통해 '나의 집으로 낙타가 들어왔다'고 말할 때, 그 낙타는 저절로 그의 집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낙타를 불러들인 것이리라. 사막 같은 세상을 낙타처럼 고행하겠다는 암시, 혹은 의지의 표현이 아니겠는가.그의 시편들은 대체로 어둡고,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들도 많지만, 그러나 그의 시는 미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시집의 뒷표지에 그의 스승인 최하림 시인이 쓴 '마침내 그가 침묵을 깨고 날아오르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불기둥이 되어 타오르는 그를 보게 될 것이고, 광휘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시집은 광휘의 예감과 징조를 보여주는 시집에 속할 것이다.'라는 구절은, 그의 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평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오래지 않아 그가 광휘로 빛나리라 기대한다.'낙타시인'으로 통하는 그의 앞으로의 행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다.나는 이미 그의 시에 전염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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