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관희 시집 '사랑 1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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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관희 시집 '사랑 1그램'

처럼 0 375
걷는사람 시인선 66
홍관희 『사랑 1그램』 출간


“그녀가 내게 준 사랑 1그램을 떼어 먹으며
오늘 하루도 잘 살고 있습니다”

강물의 울림을 받아 적은 손
생을 비추는 달빛처럼 웅숭깊은 시편들


생에 대한 근원적 고찰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유를 개진해 온 홍관희 시인의 『사랑 1그램』이 걷는사람 시인선 66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홍관희 시인은 1982년 《한국시학》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녹색 시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는 핵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를 펴냈으며, 두 권(『그대 가슴 부르고 싶다』『홀로 무엇을 하리』)의 시집을 출간했다. 세 번째 시집 『사랑 1그램』은 한층 농익은 시선으로 자연에 깃든 삶의 무늬를 섬세하고 온기 어린 문장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시집의 주된 배경은 산과 강(남평 드들강변)이다. 삶과 자연의 경계에서 건져 올린 문장들은 자연을 고스란히 닮아 있다. 시인은 “서정적인 가족”과 함께 강가를 거닐었던 그곳에서 “그날따라 유난히 슬프도록 동그랗던 그 달”을 보면서 오래전의 “초록초록한 소년”을 떠올린다. 그러곤 “길 잃은 달의 손을 서둘러 잡아 주었던 착한 섬진강”을 보고 시인은 이내 깨닫는다. “이십여 년이란 세월이 지나도록” 그 소년은 “그날의 그 둥근 달과 섬진강을 날마다/집으로 데리고 오고”(「저 달을 집으로 데리고 가 주세요」) 있다는 것을. 사람(가족)과 자연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영상처럼 펼쳐내는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거대한 수압에 눌린 해저 울음들” 같은 정서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 울음들에 결코 짓눌리지 않는다. 그는 “물기에 젖지 않는 것이 없는 세상과/하나가 되”(「흔들리는 섬」)어 기어이 ‘섬’ 같은 생애를 떠받치고 살아가고자 한다.
시인이 담담한 어조로 그리움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상실을 회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찍이 상실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 별이 뜨는 이유를 알아차리게 해 주는” 일이고, “일생 동안의 길들이/어느 순간 한꺼번에 몸 밖으로 나가/영원으로 닿는 길 하나를 내는 것”(「마지막 이사」) 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숙명을 받아들인 사람처럼 보인다. 숙명을 받아들인 사람은 평범한 자연을 비범한 생의 풍경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시를 읽다 보면 우리도 생의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인의 태도에 동조하게 된다. “그저 아무런 단서를 달지 않고 강물을 박차고 오른 날갯짓 하나만으로” 그의 ‘사는 법’에 경의를 느끼게 된달까. 물론 “스스로 어두워져야 비로소 바깥을 잘 들여다볼 수 있게”(조성국 발문, 「영혼이 흘리는 울림 깊은 눈물의 은유」) 되는 삶의 이치는 한순간에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다. 모진 고문 끝에 살아 돌아오신 젊은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뼛속까지 눈물뿐인 깊은 상처”(「송정리 1」)를 안고서도 사는 내내 ‘사랑 1그램’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시로 써내고, 아침저녁으로 그 시를 강물 위에 흘려보낸 성실한 사람만이 이룰 수 있는 성취일 것이다.
무대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이자 시인의 아들이기도 한 홍승안 배우는 추천사를 통해 “시인은 한순간도 시와 사랑을 말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면서 시인이 가지고 있는 문학에 대한 진정 어린 태도를 회고한다.
“무거운 산”을 이고 지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홍관희의 이번 시집은 드들강 강물 한 모금처럼 달고 시원하게 읽힐 것이다.

 
작품 속으로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잘 살아야 할 이유를 알아차리게 해 주는 것이다
밤하늘에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한 작은 별 하나
그 별이 뜨는 이유를 알아차리게 해 주는 것이다
-「마지막 이사」 부분

내가 나를 놓아주자
내가 길이 아님에도 기꺼이 나를 통과해 주던 것들이
발걸음마다 쉼표로 따라붙었다

발걸음마다 따라붙던
쉼표 몇 개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었다
-「청산도에 두고 온 쉼표」 부분

—하늘을 걷고 있는 저 달이 우리를 계속 따라오는데
  길을 잃었나 봐요
  저 달을 집으로 데리고 가 주세요

그 말을 엿들었는지 나보다 먼저
섬진강이 서둘러 달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슬프도록 동그랗던 그 달도
길 잃은 달의 손을 서둘러 잡아 주었던 착한 섬진강도
이십여 년이 지나도록 우리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저 달을 집으로 데리고 가 주세요」 부분

그녀의 눈물 떨어지는 소리를 숨겨 주려고
제 몸이 문드러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압력솥 안에 있는 대추알들이
저리도 요란법석을 떨며
자발적으로 오래 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일생을 모두 내어 주며 떠나가는 대추알들 앞에서
등허리를 주먹으로 꾹꾹 누르며
대추고를 내는 데 바치는 그녀의 일곱 시간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그녀를 향한 사랑의 통증을 내가 앓아야 한다
-「그녀의 일곱 시간」 부분

세상을 밝히기 위해 바다를 뚫고 올라오려는 해를
내리누르고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내가 그녀의 저항선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를 생각하였다

파도와 갈매기가 가끔 내 생각 속을 찾아와
사랑하는 방법을 묻기도 하였다

제주 바다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수평선은 그녀와 나만 떠나보내지는 않았다
-「제주 바다 수평선이 가르쳐 준 것」 부분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 울음들이
떠받치고 있는 작은 섬들의
어깨가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섬」 부분

하루아침에 앉은키로 세상을 마주하게 된
친구의 계절은
지워지는 봄날에 늘 갇혀 있었다

휘파람을 품고 있어서인지
친구의 잦은 통증에
반창고처럼 상처를 기억하고 있는
무등산 나무 이파리들의 떨림이 그치지 않았다
-「무등산 낮달」 부분

시인의 말

남평 드들강은 풍경이 수심水深보다 깊다.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징검다리로 강을 건너거나
강변길을 따라 걷는 사람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드들강에서 바라본 각각의 세계는
같지만 같을 수 없다.

같지만 같을 수 없는
각각의 세계에서 개안開眼할 때
시는 비로소
엷은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여름
홍관희

시인 소개
광주에서 태어나 1982년《한국시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그대 가슴 부르고 싶다』『홀로 무엇을 하리』를 냈으며, 나주 남평 드들강변에서 카페 ‘강물 위에 쓴 시’를 운영하고 있다.

추천사
“시집 팔아 밥 먹고 살아가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시인을 나는 ‘꿈꾸는 소년’이라고 불렀다.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르고서야 세 번째 시집을 내놓는 시인은 한순간도 시와 사랑을 말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떠오르는 시적 문장을 가족 카톡 방에 올리곤 했다. “곡선으로 말하는 강이 좋아 강을 즐겨 찾던”(「저 달을 집으로 데리고 가 주세요」) 시인은 그녀가 건네준 “사랑 1그램을 떼어 먹으며/오늘 하루도 잘 살고 있”(「사랑 1그램」)는 행복한 시인이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강물을 보다가 “갈수록 임대아파트를 닮아 가는 홀로 계신 노모를 생각하며”(「그녀의 일곱 시간」) 눈물 짓는 그녀에게 손수 내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넌지시 건넬 줄 아는 시인, 그가 바로 나의 아버지다. 나는 무대 위에서 말을 하는 사람이고 아버지는 종이에 말을 쓰는 사람이다. 때로는 낯선 모습으로 때로는 서로 포개지는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 왔는데 그 중심에는 늘 시가 피어나고 있었다. 끊임없이 그녀와 이웃과 세상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 나서는 시인. 나는 오랫동안 시인의 시를 맨 처음 읽어 온 독자로서 ‘꿈꾸는 소년’처럼 살아가는 시인의 따뜻한 말들이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 몸 밖으로 영영 내보내고 싶지 않은 문장으로 깊이 새겨질 것을 믿는다.
 홍승안 배우


차례
1부 새는 죽어 좌우 날개를 버리고 창공을 남긴다
사는 법

모든 날개를 잃은 새
찌그러진 동전
이삭
작은 꽃
마지막이사
그림자
나이
할머니의 긴 그림자
성탄절에
나무 한 그루 1
나무 한 그루 2
제주 바다에서
설어가 내리는 마을
사람과 사람 사이
청산도에 두고 온 쉼표
닿고 싶다

2부 저 달을 집으로 데리고 가 주세요

저 달을 집으로 데리고 가 주세요
광주송정역
사랑 1그램
모자의 무게
그녀의 일곱 시간
대추차 한 잔
제주 해변에서
제주 바다 수평선이 가르쳐 준 것
남평역
드들강 1
드들강 2
드들강 3
드들강 4
강물 위에 쓴 시 1
강물 위에 쓴 시 2
강물 위에 쓴 시 3
봄 손님 1
봄 손님 2

3부 좌회전이 더 편안한 데는 이유가 있다
빈 바다
파리채로 시를 잡다
반달이 품은 온달
흔들리는 섬
송정리 1
송정리 2
송정리 3
송정리 4
송정리 5
송정리 6
송정리 7
송정리 8
사모곡
감1, 그리고 감2
꽃이 피네
물집
무등산 낮달
새벽 7시 조찬회의
좌회전

발문
영혼이 흘리는 울림 깊은 눈물의 은유
—조성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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