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봉 시집 '우포늪 왁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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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봉 시집 '우포늪 왁새'

이서연 0 3129
2002.10.18 金 대한매일기사 > 19면 문학
 
배한봉씨 두번째 시집 `우포늪 왁새' - 우포늪에서 생명을 보았네
 
  
 
배한봉은 시인이다.그냥 시인이 아니라 이 땅의 생태 역사가 숨쉬는 우포늪 지기 시인이다.왜가리와 개구리밥,자운영,가시연꽃 등속과 더불어 우포늪 ‘ 맑은’ 물에 베잠방이를 적시고 사는 그의 시는,그래선지 온통 자연색이다. 어디에도 인공 감미료의 역겨움이 배어 있지 않다.청량하고 담백하다.

‘온 몸에 돋은 가시로 제 살을 물어뜯지 않고서는 터질 수 없는 선지빛 꽃 의 뇌관.(중략)분노와 증오,탄식마저 사랑해야 할 여름의 끝,빈 손으로 돌아 온 이들을 위해 불을 댕기는 저 꽃 앞에서 나는 자꾸만 울고 싶은 것이다.’ (가시연꽃 중)라는 그는 우포를 떠나서는 이미 시인이 아닐는지도 모른다.그 의 시정은 가시연꽃처럼 끝모를 늪의 깊이를 향해서만 비로소 벙그는 꽃 같 은 것.

그의 두번째 시집 ‘우포늪 왁새’(시와 시학사)는 흔한 시평 하나 없는 숭 늉처럼 밍밍한 시집이지만 속을 들춰보면 물위를 비추는 아침 빛살처럼 눈 시리게 다가온다.

‘나는 지금 1억년 전의 사서(史書)를 읽고 있다/빗방울은 대지에 스며들 뿐만 아니라/돌 속에 북두칠성을 박아놓고 우주의 거리를 잰다/신호처럼 일 제히 귀뚜리의 송신이 그치고/들국 몇 송이 나즉한 바람에 휘어질 때/세상의 젖이 되었던 비는,마지막 몇 방울의 힘으로/돌 속에 들어가 긴 잠을 청했으 리라’(빗방울 화석 중) 이처럼 그의 시세계는 ‘우포’ 또는 ‘우포의 생태’라는 현실을 통해 잊 혀진 역사와 만나고,‘돌 속의 잠’으로 표현되는 현실 또는 현실 이후의 날 들과도 만나기를 희망한다.다시 곱씹어 보라.낱알 같은 빗방울 하나에서 근 원조차도 모를 생명의 기원을 보는 시인의 명상은 얼마나 건강한 것인가.

시편에 나타난 그의 주지(主知) 지향적 진지함은 많은 사람들이 ‘생태의 보물창고’라는 우포늪에서 하나의 기원을 구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 진지함은 ‘봄이 지뢰를 밟았다’(자운영 꽃밭에서)거나 ‘비로소 지느러 미 흔들며 입을 뻐끔거리는 물고기와/부화된 유충들의 오랜 믿음이/한 뜸씩 유영의 무늬를 수놓는 물의 성소’(물의 신전)에서처럼 현상이 그의 시적 정 수기를 거쳐 구체화된다.

이런 그의 시가 더 포근한 것은 자칫 냉랭할 수 있는 주지적 경향을 ‘사람 냄새’로 감싸고 있다는 점이다.‘6월 우포늪에 오려면 우항산 멍석딸기 익 을 때가 좋고요/우항산 가는 길은 물억새 키를 덮는 토평둑이 좋지요’라는 그의 우포 사랑이 ‘달콤시큼’하다.5500원.

심재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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