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 김상옥 ‘아내따라 하늘로’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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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1 00:20
원로 시조시인 초정(草丁) 김상옥씨가 60여년간 해로했던 부인을 잃자 식음을 전폐하고 지내다 엿새 만인 31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15년 전 화랑에 그림을 보러갔다 넘어져 다리를 다친 고인은 이후 부인 김정자씨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난 26일 김씨가 낙상 후 합병증 등으로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것을 채념한 듯 슬퍼하다 부인의 뒤를 따라갔다.
큰딸 훈정씨는 “아버지의 병수발을 하던 어머니가 보름 전 허리를 가볍게 다쳐 병원에 입원했는데 X레이를 찍어보니 다친 곳이 아니라 다른 곳의 뼈들이 이미 여러 곳 부러진 상태였다”며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부서진 것도 모르고 그야말로 ‘분골쇄신’하며 아버지를 수발하다 세상을 먼저 떠났다”고 말했다.
훈정씨는 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이틀 만에 아버지께 사실을 알렸다”며 “아버지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나에게 이제부터 밥을 권하지 마라’며 식음을 전폐했다”고 전했다. 김시인은 이날 큰딸에게 ‘어머니 은혜’를 부르라고 시키는가 하면 밤새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김시인은 지난 30일 판교 공원묘지에 묻힌 아내의 묘지에 다녀온 직후 집에서 쓰러져 인근 고려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뇌사상태에 빠져 있던 김시인은 이튿날인 31일 오후 6시20분쯤 산소호흡기를 제거함으로써 60여년간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던 아내 곁으로 돌아갔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일제시대 이후 국내 시단의 대표적 시조시인으로 활동했던 고인은 ‘봉선화’ ‘백자부’ ‘다보탑’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몇몇 작품은 중·고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딸 훈정(58)·훈아(55)씨와 아들 홍우씨(53·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 2녀 1남, 사위 김성익 인하대 초빙교수(58) 등이 있다. 서울삼성병원에 빈소가 마련됐으며 발인은 3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2
〈도재기기자 jaekee@kyunghyang.com〉
老시인, 6일만에 부인곁으로
원로 시조시인 김상옥씨가 60여년간 해로하던 부인을 잃자 식음을 전폐하고 지내다가 엿새 만인 31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김 시인은 15년 전 화랑에 그림을 보러 갔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친 뒤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했다. 이후 지난 26일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김정자(81)씨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아왔다.
큰딸 훈정씨는 “아버지 병수발을 하던 어머니가 보름전에 허리를 가볍게 다쳐 입원했는데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다친 게 아니라 다른 곳의 뼈들이 이미 여러 곳 부러진 상태였다”면서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부서진 것도 모르고 아버지를 보살펴왔다”고 말했다.
훈정씨는 “아버지는 어머니 없으면 살 수 없는 분”이라며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가 입원한 지 한참 지난 24일에야 아버지와 함께 병문안을 갔다”고 밝혔다.
면회 후 이틀 만에 부인이 세상을 떠났지만 김 시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 충격을 받을까봐 자식들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훈정씨는 “사후 이틀 만에 아버지께 사실을 알렸는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면서 “하지만 아버지는 ‘이제부터 나에게 밥을 권하지 마라’며 식음을 전폐했다”고 전했다. 김 시인은 이날 큰딸에게 ‘어머니 은혜’를 부르게 하고 밤새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지난 30일 아내의 묘지에 다녀온 김 시인은 거주하던 종암동의 둘째 딸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인근 고려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사상태에 빠졌다. 그는 이튿날인 31일 오후 6시20분 별세했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일제시대 이후 국내 시단의 대표적 시조시인으로 활동했던 고인은 ‘봉선화’ ‘백자부’ ‘청자부’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몇몇 작품은 중·고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딸 훈정(58) 훈아(55)씨와 아들 홍우(53·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씨 등 2녀 1남, 사위 김성익(58) 인하대 초빙교수 등이 있다. 서울삼성병원에 빈소가 마련됐으며, 발인은 3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2.
조민중기자, 연합뉴스
아내 따라 5일만에 세상 버린 시인의 비가
“당신 없는 삶은 감당 못할 고통입니다”
부인 김정자씨 잃은 원로 시조시인 김상옥씨
식음 전폐…死別 5일만에 끝내 아내 곁으로
[조선일보 최승현 기자]
‘조춘’, ‘옥적’, ‘백자부’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원로 시조시인 김상옥 (金相沃)씨가 60여년간 해로한 부인이 5일 전 갑자기 사망하자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한 끝에 31일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고인은 지난 30일 오후 2시쯤 함께 살고 있던 딸 훈아(54)씨의 집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119 구급대를 통해 고려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지난 26일 사망한 부인 김정자(金貞子)씨의 경기도 광주시 묘소를 다녀온 직후였다. 하루가 지나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던 고인은 결국 31일 오후 6시30분 유명을 달리했다. 10여년 전 허리관절을 다쳐 몸이 다소 불편했던 고인은 심장이 조금 약했을 뿐 특별한 지병을 앓고 있지는 않았다. 유족들은 “유난히 금슬이 좋았던 두 분이었는데, 아버님께서 어머님의 갑작스러운 사별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훈아씨에 따르면, 고인이 부인의 사망소식을 접한 것은 28일. 자식들이 아버지가 받을 충격을 고려해 어머님 사망 소식을 3일이나 늦게 전한 것이었다. 부인 김씨는 한 달여 전 허리를 다친 뒤 폐렴까지 겹쳐 끝내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남편 김 시인은 직후부터 “내가 먼저 가야되는데 그 사람 기도는 들어주고 내 기도는 왜 안 들어주는 것인가?”, “이 시간부터 밥을 안 먹고 그 사람을 따라갈 것이다” 등의 말을 하며 괴로워했다.
6녀1남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은 194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낙엽’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초적’, ‘이단의 시’, ‘석류꽃’, ‘근작시초’, ‘가을열쇠’ 등의 시집을 냈고, 노산문학상(1976), 중앙시조대상(1982), 보관문화훈장(1995) 등을 수상했으며, 한국시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고문도 역임했다.
초정은 “가람과 노산을 뛰어넘어 한국시조사의 한 획을 그은 시조시인”이라는 평을 들었으며, 특히 “시·서·화에 능한 우리 시대의 삼절(三絶)”이라는 존경을 받아왔다.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한때 중·고교 교사로 일했고, 서울로 올라와 인사동 골동품점인 ‘아자방’을 경영할 정도로 백자의 감식과 수집, 그리고 전각실력에서 뛰어난 품격을 보였다.
유족으로는 아들 김홍우(51)씨, 딸 훈정(58), 훈아(54)씨 등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30분
(최승현기자vaidale@chosun.com )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원로 시조 시인 김상옥씨 별세
원로 시조 시인 김상옥씨가 어제 저녁 서울 안암동 고려대병원에서 향년 84세로 별세했습니다.
경남 통영 출신인 고인은 1938년 동인지 '맥'에 '모래알' 등을 발표하고 '문장'지에 '봉선화'를 추천받았으며, 194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낙엽'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같은 고향 출신인 시인 유치환, 작곡가 윤이상 등과 가까웠던 그는 일제시대에 항일 운동에 가담했다가 몇 차례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시조집 '초적'과 '목석의 노', '삼행시'와 '묵을 갈면서'산문집 '시와 도자'를 통해 민족의 얼이 깃든 문화유산과 영원한 생명에 관한 탐구정신을 보여줬습니다.
고인은 지난 달 26일 부인 김정자 여사가 먼저 세상을 뜨자 식음을 전폐했으며 부인의 장례식이 끝난 지 이틀 만에 이승을 떠났습니다.
서울삼성병원에 빈소가 마련됐으며 발인은 3일 오전 8시반입니다.
[저작권자(c) YTN & Digital YTN.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상옥 기자
15년 전 화랑에 그림을 보러갔다 넘어져 다리를 다친 고인은 이후 부인 김정자씨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난 26일 김씨가 낙상 후 합병증 등으로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것을 채념한 듯 슬퍼하다 부인의 뒤를 따라갔다.
큰딸 훈정씨는 “아버지의 병수발을 하던 어머니가 보름 전 허리를 가볍게 다쳐 병원에 입원했는데 X레이를 찍어보니 다친 곳이 아니라 다른 곳의 뼈들이 이미 여러 곳 부러진 상태였다”며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부서진 것도 모르고 그야말로 ‘분골쇄신’하며 아버지를 수발하다 세상을 먼저 떠났다”고 말했다.
훈정씨는 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이틀 만에 아버지께 사실을 알렸다”며 “아버지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나에게 이제부터 밥을 권하지 마라’며 식음을 전폐했다”고 전했다. 김시인은 이날 큰딸에게 ‘어머니 은혜’를 부르라고 시키는가 하면 밤새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김시인은 지난 30일 판교 공원묘지에 묻힌 아내의 묘지에 다녀온 직후 집에서 쓰러져 인근 고려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뇌사상태에 빠져 있던 김시인은 이튿날인 31일 오후 6시20분쯤 산소호흡기를 제거함으로써 60여년간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던 아내 곁으로 돌아갔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일제시대 이후 국내 시단의 대표적 시조시인으로 활동했던 고인은 ‘봉선화’ ‘백자부’ ‘다보탑’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몇몇 작품은 중·고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딸 훈정(58)·훈아(55)씨와 아들 홍우씨(53·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 2녀 1남, 사위 김성익 인하대 초빙교수(58) 등이 있다. 서울삼성병원에 빈소가 마련됐으며 발인은 3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2
〈도재기기자 jaekee@kyunghyang.com〉
老시인, 6일만에 부인곁으로
원로 시조시인 김상옥씨가 60여년간 해로하던 부인을 잃자 식음을 전폐하고 지내다가 엿새 만인 31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김 시인은 15년 전 화랑에 그림을 보러 갔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친 뒤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했다. 이후 지난 26일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김정자(81)씨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아왔다.
큰딸 훈정씨는 “아버지 병수발을 하던 어머니가 보름전에 허리를 가볍게 다쳐 입원했는데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다친 게 아니라 다른 곳의 뼈들이 이미 여러 곳 부러진 상태였다”면서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부서진 것도 모르고 아버지를 보살펴왔다”고 말했다.
훈정씨는 “아버지는 어머니 없으면 살 수 없는 분”이라며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가 입원한 지 한참 지난 24일에야 아버지와 함께 병문안을 갔다”고 밝혔다.
면회 후 이틀 만에 부인이 세상을 떠났지만 김 시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 충격을 받을까봐 자식들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훈정씨는 “사후 이틀 만에 아버지께 사실을 알렸는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면서 “하지만 아버지는 ‘이제부터 나에게 밥을 권하지 마라’며 식음을 전폐했다”고 전했다. 김 시인은 이날 큰딸에게 ‘어머니 은혜’를 부르게 하고 밤새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지난 30일 아내의 묘지에 다녀온 김 시인은 거주하던 종암동의 둘째 딸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인근 고려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사상태에 빠졌다. 그는 이튿날인 31일 오후 6시20분 별세했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일제시대 이후 국내 시단의 대표적 시조시인으로 활동했던 고인은 ‘봉선화’ ‘백자부’ ‘청자부’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몇몇 작품은 중·고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딸 훈정(58) 훈아(55)씨와 아들 홍우(53·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씨 등 2녀 1남, 사위 김성익(58) 인하대 초빙교수 등이 있다. 서울삼성병원에 빈소가 마련됐으며, 발인은 3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2.
조민중기자, 연합뉴스
아내 따라 5일만에 세상 버린 시인의 비가
“당신 없는 삶은 감당 못할 고통입니다”
부인 김정자씨 잃은 원로 시조시인 김상옥씨
식음 전폐…死別 5일만에 끝내 아내 곁으로
[조선일보 최승현 기자]
‘조춘’, ‘옥적’, ‘백자부’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원로 시조시인 김상옥 (金相沃)씨가 60여년간 해로한 부인이 5일 전 갑자기 사망하자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한 끝에 31일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고인은 지난 30일 오후 2시쯤 함께 살고 있던 딸 훈아(54)씨의 집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119 구급대를 통해 고려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지난 26일 사망한 부인 김정자(金貞子)씨의 경기도 광주시 묘소를 다녀온 직후였다. 하루가 지나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던 고인은 결국 31일 오후 6시30분 유명을 달리했다. 10여년 전 허리관절을 다쳐 몸이 다소 불편했던 고인은 심장이 조금 약했을 뿐 특별한 지병을 앓고 있지는 않았다. 유족들은 “유난히 금슬이 좋았던 두 분이었는데, 아버님께서 어머님의 갑작스러운 사별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훈아씨에 따르면, 고인이 부인의 사망소식을 접한 것은 28일. 자식들이 아버지가 받을 충격을 고려해 어머님 사망 소식을 3일이나 늦게 전한 것이었다. 부인 김씨는 한 달여 전 허리를 다친 뒤 폐렴까지 겹쳐 끝내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남편 김 시인은 직후부터 “내가 먼저 가야되는데 그 사람 기도는 들어주고 내 기도는 왜 안 들어주는 것인가?”, “이 시간부터 밥을 안 먹고 그 사람을 따라갈 것이다” 등의 말을 하며 괴로워했다.
6녀1남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은 194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낙엽’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초적’, ‘이단의 시’, ‘석류꽃’, ‘근작시초’, ‘가을열쇠’ 등의 시집을 냈고, 노산문학상(1976), 중앙시조대상(1982), 보관문화훈장(1995) 등을 수상했으며, 한국시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고문도 역임했다.
초정은 “가람과 노산을 뛰어넘어 한국시조사의 한 획을 그은 시조시인”이라는 평을 들었으며, 특히 “시·서·화에 능한 우리 시대의 삼절(三絶)”이라는 존경을 받아왔다.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한때 중·고교 교사로 일했고, 서울로 올라와 인사동 골동품점인 ‘아자방’을 경영할 정도로 백자의 감식과 수집, 그리고 전각실력에서 뛰어난 품격을 보였다.
유족으로는 아들 김홍우(51)씨, 딸 훈정(58), 훈아(54)씨 등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30분
(최승현기자vaidal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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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시조 시인 김상옥씨 별세
원로 시조 시인 김상옥씨가 어제 저녁 서울 안암동 고려대병원에서 향년 84세로 별세했습니다.
경남 통영 출신인 고인은 1938년 동인지 '맥'에 '모래알' 등을 발표하고 '문장'지에 '봉선화'를 추천받았으며, 194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낙엽'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같은 고향 출신인 시인 유치환, 작곡가 윤이상 등과 가까웠던 그는 일제시대에 항일 운동에 가담했다가 몇 차례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시조집 '초적'과 '목석의 노', '삼행시'와 '묵을 갈면서'산문집 '시와 도자'를 통해 민족의 얼이 깃든 문화유산과 영원한 생명에 관한 탐구정신을 보여줬습니다.
고인은 지난 달 26일 부인 김정자 여사가 먼저 세상을 뜨자 식음을 전폐했으며 부인의 장례식이 끝난 지 이틀 만에 이승을 떠났습니다.
서울삼성병원에 빈소가 마련됐으며 발인은 3일 오전 8시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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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