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노마(石老馬) 할머니

홈 > 시 사랑 > 나도 시인 > 정연복
나도 시인


아직 등단하지 않았지만 시에 관심과 조예가 있는 분들의 자기 작품을 소개합니다.
등단시인은 시인약력에 본인 프로필을 등록하신 후 회원등급 조정을 요청하시면 <시인의 시>에 작품을 올릴 수 있습니다.

석노마(石老馬) 할머니

정연복 0 1449
석노마(石老馬) 할머니

외할머니께서 83세의 일기로
내 곁을 떠나신 지
어느새 만 11년이 되었다.
시집온 지 겨우 몇 년 만에
청상과부가 되셔서
달랑 외동딸 하나 키우시며
긴 세월 많이 외로우셨을 할머니

평생을 하루도 빠짐 없이
우리 위해 밥 짓고 빨래 하시느라
늘 고단하셨던 할머니
그냥은 써서 못 마시겠다며
설탕 한 숟가락 넣은
막걸리 한 사발을 놓고서도
몇 번이고 쉬엄쉬엄 나눠 드시던
나의 외할머니

1991년 1월 17일 저녁
할머니가 현관 밖 차디찬 계단에
쓰러져 계신 것을
나의 아내가 발견하였을 때도,
할머니는 마당에 넣어 두셨던
하얀 광목 한 보따리를
가녀리게 야윈 품에
보석처럼 끌어안고 계셨지

세상을 하직하시던 그 날도
우리 위해 저녁밥을 지으셨지
단 한마디의 유언도 남기시지 못한 채
싸늘한 육신으로 돌아가신 할머니
할머니가 우리 곁을 영영 떠나셨다는 게
나 도무지 느껴지지 않아
할머니가 늘 주무시던 그 자리에
나 밤마다 이부자리를 펴 드렸었네

돌(石)처럼 한평생 변함 없이
우리를 기르시고 보살펴 주셨던 할머니
고단한 살림살이를 지탱하시느라
늙은 말(老馬)처럼 야위셨던
당신의 그 모습이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성스럽게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말없이 머물다 가신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할머니
(2002.7.16. 외할머니가 그리운 날)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