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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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게

정연복 0 1915
<지하철에게>

우리집 베란다 창문 너머로는
창동 지하철 기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아파트 담벼락인 양 늘어서 있는
꽤 울창한 나무들의 숲이
창동 기지와 바로 맞닿아 있다

거미줄처럼 얽힌
가느다란 선로들을 따라

빽빽이 들어차 있는
족히 수백 량은 되는 지하철들

새벽부터 밤 이슥하도록 
수많은 승객들을 실어 나르는
고단한 하루의 운행을 마치고

이제는 가지런히 정렬하여
단체로 오수를 즐기는
지하철들 위로

사월의 마지막 날의 
따순 햇살이
사뿐히 내려앉는다

이따금 동굴을 빠져 나와
잠시 햇살을 보기도 하겠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어둠 속에 살아야 하는
저 지하철들은
밝은 햇살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저 지하철들 중에는
나를 실어 나른 녀석도 있으리라

잠시의 휴식이 끝나면
다시 분주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고단한 생의 모든 근심과 피로를 잊고
깊이 안식하여라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하는
착한 지하철들이여
(2008.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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