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소재로 한 정연복 시인의 시 모음> '오대산, 노인봉을 오르며' 외
<산을 소재로 정연복 시인의 시 모음> '오대산, 노인봉을 오르며' 외
+ 산을 오르며
우람한 산 앞에 서면
나의 존재는 얼마나 작은가!
겸허하게 살자고 다짐하면서도
가끔은 교만이 고개를 치켜드는
아직도 많이 설익은 나의 인생살이를
산은 말없이 가르쳐 주지.
높음과 깊음은
하나로 통한다는 것
깊숙이 내려앉기 위해
가파르게 오르는 아름다운 삶의 길을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말없이 산은 내게 이야기하지.
+ 오대산, 노인봉을 오르며
나 어릴 적
엄마의 젖무덤 같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굽이굽이 펼쳐지는
오!
저 평화의 능선들
하늘 도화지에
파란 물감을 푼 듯
구름 한 점 없는
순수의 하늘을 우러르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켜켜이 쌓인
세속의 미움과 욕심이
옷을 벗는다
+ 삼각산, 보현봉을 오르며
완만한 사자능선의 저 끝에
칼날처럼 서 있는 보현봉
그 무슨 애틋한 사연
남몰래 가슴속에 있어
한 아낙네는
속세의 인연을 끊으려
이 높은 봉우리까지
올라왔을까
하늘과 맞닿은 봉우리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안으로 슬픔을 삼켰을까
저 먼 옛날
어느 아낙의 아픔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어제도 오늘도 말없이
서 있는 보현봉
+ 어머니 산(山)
하늘에 맞닿은 높은 봉우리와
깊숙이 내려앉은 계곡
드문드문 우람한 바위들과
아가 손 만한 작은 돌멩이들
훌쩍 키 큰 나무들과
앉은뱅이 이름 없는 풀들
숨가쁜 오르막길과
편안한 내리막길
전망이 탁 트인 능선과
푸른 잎새들의 그늘 속 오솔길
천둥과 번개와 벼락
벼락 맞아 쓰러진 고목들
산은 너른 품으로
말없이 이 모든 것을 포옹한다
오!
어머니 산(山)
+ 유월의 산
산의 말없이
너른 품에 들어서서
유월의 푸른 이파리들이
총총히 엮어 드리운
그늘 진 오솔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
내 몸에도 흠뻑
파란 물이 든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옹졸해진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어느새 쪽빛 하늘이 되고
세상 근심은 솔솔
바람에 실려 아스라이 흩어진다
+ 산
어제는 눈부신 쪽빛이더니
오늘은 희뿌연 잿빛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폭우 속에
신들린 듯 춤추는
저만치 나무 잎새들
그래도 저 멀리
보이는 도봉산은
미동조차 없는
한 폭의 정물화 같다
흔들림 속의 저 의연한
한 점 고요!
산은 말없이
한 수(手) 가르쳐 준다
+ 도봉산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하늘인가
굽이굽이 능선들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으스대지 않고서도
사뿐히 하늘에 가 닿은
저 도봉산의
고요히 의연한 모습
혹한(酷寒) 속에
하늘은 한층 푸르고
도봉산은
더 초롱초롱하다
+ 도봉산에서
어둠이 사르르
커튼처럼 내리는
도봉산 자운봉 오르는
비스듬한 길 중턱
이제는 정이 든
바위들 틈에 앉아
막걸리 한 잔의
행복한 성찬을 차렸다
저 아래 수많은
사람들의 집마다
귀가(歸家)의 불빛은
점점이 포근한데
저기 우람한 산봉우리는
말이 없네
+ 도봉산
굽이굽이
길다란 능선들의
저 육중한 몸뚱이
하늘 아래 퍼질러 누워
그저 햇살이나 쪼이고
바람과 노니는 듯
빈둥빈둥
게으름이나 피우는 듯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틈에
너의 온몸
연둣빛 생명으로
활활 불타고 있는가
정중동(靜中動)!
고요함 속
너의 찬란한 목숨
+ 사랑을 훔쳐보다
소요산 자재암 지나
하백운대 가는 길
가을은 벌써 깊어
낙엽은 쌓이는데
문득 바라본
저 멀리 서쪽 능선에
아슬아슬 걸친
고운 햇살.
가지 말라고
온몸으로 붙드는 능선과
이제는 가야 한다고
손사래 치면서
연분홍 눈물 쏟으며
슬금슬금 멀어지는 햇님의
쓸쓸하고도
어여쁜 연애(戀愛).
뜸을 들이면
이별도 저렇게 아름다운 것인가
+ 겨울산
산은
늘 말이 없지만
겨울산은
더욱 고요하다
저 큰 몸집으로
하늘과 땅을 이으면서도
제 하는 일 아무것도
없는 양
있는 듯 없는 듯
영원을 살아가는
온몸이 너른 가슴이고
다소곳한 귀일 뿐
말없는 산
* 정연복: 1957년 서울 출생.
2007년 3월부터 벗들과 산행 시작
+ 산을 오르며
우람한 산 앞에 서면
나의 존재는 얼마나 작은가!
겸허하게 살자고 다짐하면서도
가끔은 교만이 고개를 치켜드는
아직도 많이 설익은 나의 인생살이를
산은 말없이 가르쳐 주지.
높음과 깊음은
하나로 통한다는 것
깊숙이 내려앉기 위해
가파르게 오르는 아름다운 삶의 길을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말없이 산은 내게 이야기하지.
+ 오대산, 노인봉을 오르며
나 어릴 적
엄마의 젖무덤 같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굽이굽이 펼쳐지는
오!
저 평화의 능선들
하늘 도화지에
파란 물감을 푼 듯
구름 한 점 없는
순수의 하늘을 우러르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켜켜이 쌓인
세속의 미움과 욕심이
옷을 벗는다
+ 삼각산, 보현봉을 오르며
완만한 사자능선의 저 끝에
칼날처럼 서 있는 보현봉
그 무슨 애틋한 사연
남몰래 가슴속에 있어
한 아낙네는
속세의 인연을 끊으려
이 높은 봉우리까지
올라왔을까
하늘과 맞닿은 봉우리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안으로 슬픔을 삼켰을까
저 먼 옛날
어느 아낙의 아픔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어제도 오늘도 말없이
서 있는 보현봉
+ 어머니 산(山)
하늘에 맞닿은 높은 봉우리와
깊숙이 내려앉은 계곡
드문드문 우람한 바위들과
아가 손 만한 작은 돌멩이들
훌쩍 키 큰 나무들과
앉은뱅이 이름 없는 풀들
숨가쁜 오르막길과
편안한 내리막길
전망이 탁 트인 능선과
푸른 잎새들의 그늘 속 오솔길
천둥과 번개와 벼락
벼락 맞아 쓰러진 고목들
산은 너른 품으로
말없이 이 모든 것을 포옹한다
오!
어머니 산(山)
+ 유월의 산
산의 말없이
너른 품에 들어서서
유월의 푸른 이파리들이
총총히 엮어 드리운
그늘 진 오솔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
내 몸에도 흠뻑
파란 물이 든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옹졸해진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어느새 쪽빛 하늘이 되고
세상 근심은 솔솔
바람에 실려 아스라이 흩어진다
+ 산
어제는 눈부신 쪽빛이더니
오늘은 희뿌연 잿빛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폭우 속에
신들린 듯 춤추는
저만치 나무 잎새들
그래도 저 멀리
보이는 도봉산은
미동조차 없는
한 폭의 정물화 같다
흔들림 속의 저 의연한
한 점 고요!
산은 말없이
한 수(手) 가르쳐 준다
+ 도봉산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하늘인가
굽이굽이 능선들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으스대지 않고서도
사뿐히 하늘에 가 닿은
저 도봉산의
고요히 의연한 모습
혹한(酷寒) 속에
하늘은 한층 푸르고
도봉산은
더 초롱초롱하다
+ 도봉산에서
어둠이 사르르
커튼처럼 내리는
도봉산 자운봉 오르는
비스듬한 길 중턱
이제는 정이 든
바위들 틈에 앉아
막걸리 한 잔의
행복한 성찬을 차렸다
저 아래 수많은
사람들의 집마다
귀가(歸家)의 불빛은
점점이 포근한데
저기 우람한 산봉우리는
말이 없네
+ 도봉산
굽이굽이
길다란 능선들의
저 육중한 몸뚱이
하늘 아래 퍼질러 누워
그저 햇살이나 쪼이고
바람과 노니는 듯
빈둥빈둥
게으름이나 피우는 듯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틈에
너의 온몸
연둣빛 생명으로
활활 불타고 있는가
정중동(靜中動)!
고요함 속
너의 찬란한 목숨
+ 사랑을 훔쳐보다
소요산 자재암 지나
하백운대 가는 길
가을은 벌써 깊어
낙엽은 쌓이는데
문득 바라본
저 멀리 서쪽 능선에
아슬아슬 걸친
고운 햇살.
가지 말라고
온몸으로 붙드는 능선과
이제는 가야 한다고
손사래 치면서
연분홍 눈물 쏟으며
슬금슬금 멀어지는 햇님의
쓸쓸하고도
어여쁜 연애(戀愛).
뜸을 들이면
이별도 저렇게 아름다운 것인가
+ 겨울산
산은
늘 말이 없지만
겨울산은
더욱 고요하다
저 큰 몸집으로
하늘과 땅을 이으면서도
제 하는 일 아무것도
없는 양
있는 듯 없는 듯
영원을 살아가는
온몸이 너른 가슴이고
다소곳한 귀일 뿐
말없는 산
* 정연복: 1957년 서울 출생.
2007년 3월부터 벗들과 산행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