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 오늘은 태양' 외

홈 > 시 사랑 > 나도 시인 > 정연복
나도 시인


아직 등단하지 않았지만 시에 관심과 조예가 있는 분들의 자기 작품을 소개합니다.
등단시인은 시인약력에 본인 프로필을 등록하신 후 회원등급 조정을 요청하시면 <시인의 시>에 작품을 올릴 수 있습니다.

<나의 인생시 모음> '어제는 비, 오늘은 태양' 외

정연복 0 2606
<나의 인생시 모음>  '어제는 비, 오늘은 태양' 외

+ 어제는 비, 오늘은 태양

보슬보슬 가랑비 오는 날엔
가랑비에 젖고

소낙비 쏟아지는 날엔
소낙비에 흠뻑 젖자

꽃 피는 날에는
꽃구경 가고

꽃 지는 날에는
슬픔에 잠기자

단풍 곱게 물드는 날에는
단풍구경 가고

낙엽 지는 날에는
낙엽 진 오솔길을 걸어가자

산들바람 시원한 날엔
언덕에 오르고

찬바람 쌩쌩 부는 날엔
들판을 힘껏 달리자

어제는 비
오늘은 태양

이렇게 한세월 굽이도는
새콤달콤한 시간 여행

이것이
우리의 인생살이

우리의 사랑살이 또한
그러하리라

+ 인생

어차피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눈물 같은 소주를 마시며
잠시 슬픔과 벗할지언정 

긴 한숨은
토하지 않기로 하자

아롱아롱 꽃잎 지고서도
참 의연한 모습의

저 나무들의 잎새들처럼
푸른빛 마음으로 살기로 하자

세월은
훠이훠이 잘도 흘러

저 잎새들도
머잖아 낙엽인 것을 

+ 인생의 길 

인생의 길은
산행(山行) 같은 것

가파른 오르막 다음에는
편안한 내리막이 있고

오르막의 길이 길면 
내리막의 길도 덩달아 길어진다

그래서 인생은
그럭저럭 살아갈 만한 것

완전한 행복이나 
완전한 불행은 세상에 없는 것 

살아가는 일이
괴롭고 슬픈 날에는

인생의 오르막을 걷고 있다고
마음 편히 생각하라

머잖아 그 오르막의 끝에
기쁨과 행복의 길이 있음을 기억하라

내가 나를 위로하며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인생의 길은 그래서
알록달록 총천연색 길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고달파도 고마운 길

오!
너와 나의 인생의 길이여

+ 어쩌면 삶은

어쩌면 삶은
꿈일지도 몰라

잠시 한순간의
꿈일지도 몰라

목숨 붙어 있는
찰나의

더러는 기쁘고
더러는 슬프고

더러는 사랑하고
더러는 미워하는

웃음 한 송이
눈물 한 방울의

가슴 미어지는
꿈일지도 몰라

어쩌면 삶은
꿈일지도 몰라

+ 인생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잎새들 뒤척이며
잠시 흔들리다가도

바람이 자면
저리도 잠잠히

고요의 기둥으로
서 있는 나무들

그래, 한세상
나무처럼 살다가 가자

잔잔한 일상이나
삶의 풍파 몰아치는 날에도

그저 마음의 중심 하나
꼬옥 움켜잡고

'나'라는 존재
이 광활한 우주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가자


+ 길

찬란한 정상을 꿈꾸며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몇 해 전부터
산을 가까이 벗하면서

한 가지
깨달음을 더 얻었다

깊은 계곡을 품고서야
산은 비로소 산이라는 것

산봉우리에 닿기 위해서는
내리막과 오르막의

모든 길을
기쁘게 걸어야 한다는 것

오르막에 잠시 쉬었다 가라고
손짓하는 내리막이 있어

더러는 고달픈 인생의 길도
걸어갈 만하다는 것


+ 인생 

한세월 굽이돌다 보면
눈물 흘릴 때도 있겠지

눈물이 너무 깊어
이 가슴 무너질 때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잊지 않으리

꽃잎에 맺힌 이슬에
햇빛 한 자락 내려앉으면

그 꽃잎의 눈물이
어느새 영롱한 보석이 되듯

나의 슬픈 눈물도
마냥 길지는 아니하여

행복한 웃음의
자양분이 되리라는 것을

+ 참회록

바로 코앞에 들이댄
신문의 글자들이 흐릿할 만큼

몸이
서서히 망가지는
 
나이 오십 줄에 들어
뒤늦게 벼락같이 깨닫는다

나의 사랑은
긴 세월 가뭄이 들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남몰래 흐르는

새벽 이슬처럼 맑은
그 한 방울의 눈물이 없어

늘 팍팍하게
메마른 이 몹쓸 가슴

+ 바람 

지금까지 살아 온 날들
가만히 뒤돌아보니

허공에 휘익
한줄기 바람이 스쳤을 뿐인데

어느새 반백 년 세월이
꿈결인 양 흘러

나의 새까맣던 머리에
눈꽃 송이송이 내리고 있네 

바람에 꽃잎 지듯
생명은 이렇게도 짧은 것을

덧없는 세월이기에
어쩌면 보석보다 소중한 목숨

이제는 마음이야 텅 비워
바람 되어 흐르리라

+ 이슬, 그리고 눈물

동터 오는 새벽녘
꽃잎에 맺힌
이슬은 얼마나 영롱한가

영혼이 맑은 사람의
눈동자에 어린
눈물은 얼마나 순수한가

이슬이 있어
눈물 같은 이슬이 있어
꽃잎은 더 아름답고

눈물이 있어
이슬 같은 눈물이 있어
영혼은 더 깊고 순결하다

오!
찬란한 햇살이여
그 눈물에 입맞춤하라

+ 무너지지 않는다 

지상을 거니는 내 생의 발걸음이
가끔은 휘청거릴지라도

하늘을 우러러
나는 쓰러지지 않는다

어느 누구에게라도
쓸쓸한 삶의 뒤안길은 있는 법

살아가는 일이
이따금 실타래처럼 얽혀 

많이 힘들고 괴로운 날에도
살아갈 이유는 남아 있다

맑은 날이나 흐린 날에도
높이 걸려 있는 하늘 

사시사철 변함없이
참 의연한 모습의 산과 나무들

따습고 보드라운 햇살
포근한 달빛의 위로를 받으며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나도 무너지지 않는다

+ 석양(夕陽)

서산 마루를 넘어가는
석양은 아름다워라

생명의 마지막 한 점까지 불살라
기막힌 노을 빛 하나 선물하고

아무런 미련 없이 세상과 이별하는
저 순하디순한 불덩이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눈부시지만
석양은 은은히 고와라

내 목숨의 끝도
그렇게 말없이 순하였으면!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