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숨결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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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 07:16
요 근래 겨울은 몇 년간 포근했었는데, 올겨울은 그나마 조금 겨울다웠던 것 같다. 부산엔 눈이 안 왔지만, 전라도나 경남 시골 위쪽으로는 눈도 제법 오고, 추위도 제법 기승을 부렸다. 부산에도 어릴 적엔 상당히 추워, 콧물 질질 흘리며 배를 다 내놓고 다닐 땐 손이 꽁꽁 얼어 다 부르트고, 따뜻한 물에 손을 불려 조약돌로 때를 벗기곤 했었다.
당시엔 설 전후하여 매우 추웠지만, 동네 개구쟁이들이랑 온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놀다 동네 어귀로 들어서면 여자애들은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고, 우리가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면 꼭 나만 잡으러 오던 그 아이. 꽃망울 지는 이맘때쯤 되면, 오랜 세월 세상의 한파를 맞아 꽁꽁 얼어붙어 있던 소년의 가슴속 추억들도 봄바람에 녹아난다.
아직 봄이 완연하지 않지만, 한낮의 따스한 햇볕이 마치 봄볕처럼 따스하게 몸을 감싸니, 벌써 봄이 옆에 와 있는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진다. 햇빛에 반사된 봄이건만 바람만 불어도 봄의 숨결이 느껴지고, 봄의 숨결이 언 가슴을 녹이고 세상마저 녹인다. 봄의 숨결은 모든 생명들의 가슴을 녹이고 마음을 활짝 열어젖힌다.
봄의 숨결은, 모든 생명들이 가슴속 깊이 간직하던 사랑의 씨앗을 발아시켜 사랑의 싹을 활짝 틔우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그 향기를 뿜어 올린다. 봄의 숨결은 어릴 적 그 아이의 단내 나는 속삭임처럼 나의 귓가를 맴돌며 가슴으로 파고든다. 그러고 보니, 김치볶음밥을 먹어도 그 아이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