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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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가랑비] 

몇해 전 우리나라에 엄청난 가뭄으로 다들 속이 타들어가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엔 너무 가뭄이 심하여 논밭이 쩍쩍 갈라진 것은 물론이고 오래 전 떨어진 낙엽들이 바싹 말라 불쏘시개가 되었고 살아있는 식물들마저 누렇게 말라 비틀어졌었다. 

원래 우리나라는 봄 가뭄과 가을 태풍이 재해 공식이었지만 해가 갈수록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고 올 봄에도 비가 몇 번 안 내리는 것이 일찌감치 가뭄의 조짐이 보이더니 곳곳에 번진 산불까지 꺼지지 않아 벌써 재해 수준이다. 

여기서 가뭄이 더 심해지면 적당히 내리는 비로는 잠시 해갈만 할 뿐 며칠도 안 되어 생명들은 다시 바짝 말라붙어 한낮의 태양 아래서 마른 신음을 내뱉게 되니 잠시 내리는 가랑비는 그야말로 옷깃만 스친 듯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마치 떠나간 님이 그리워 상사병에 헤매는 사람의 눈에 헛것이 보인 것인양 잠시 하얀 커튼이 흔들리는 환영을 본 것인지 착각인지 가물가물하다. 상사병의 환상을 깨뜨리는 특효약은 찬물 바가지니 혼미한 세상에 시원하게 물 한바가지 부어주기를 하늘에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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