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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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 1.2.3,4

김재훈 0 546
새벽안주

 

(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 1

 

 

 

스무살 때 광부가 되고 싶어

 

을지로5가 인력소개소를 찾았다

 

아무것도 없는 청춘이었다

 

가방에는 낡은 옷 몇벌이 전부

 

갈 곳 없는 나를 땅속에 묻고

 

이번 생은 베렸다고

 

이 생을 빨리 지나쳐버리고 싶었다

 

 

소개료 3만원을 내고 나니

 

2만원이 남았다

 

근처 여인숙 방에 낯선 이 여섯명이 들어갔다

 

내일 새벽이면 봉고차가 온다는데

 

2만원을 꼭 손에 쥐고 잠이 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새우다 희뿌염한 새벽

슬며시 길을 나섰다

 

인쇄골목 24시간 구멍가게에서 선 채로

막 삶아낸 달걀 세 개에 소주 한 병을

콜콜콜 따라 마셨다

그 달걀맛이 아직도 짭짤하게 입안을 돈다

너무 쉽게 살아도 안 되지만

너무 어렵게 살아도 안 된다

 




결핵보다 더 무서운 병


    (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2

 

종로2가 공구상가 골목 안

 여인숙 건물 지하

옛날 목욕탕을 개조해 쓰던

 일용잡부 소개소에서 날일을 다니며

 한달에 10만원을 받던 달방을 얻어 썼다

 같이 방을 쓰던 친구의 부업은

 일 다녀온 밤마다

 달방에 세든 이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타짜였다

 한번에 3만원 이상 따지 말 것

 한달에 보름은 일을 다녀야 의심받지 않는다는 것

 한 곳에 석 달 이상 머물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고 했다

 그가 가끔 사주는 5천원짜리 반계탕이 참 맛있었다

 밤새워 때전 이불 속에서 책을 읽고 시를 쓰는 내게

 너는 나처럼 살지 말고 성공하라고

 진정으로 부럽다고 했다

 떠나가던 날, 고백을 하는데

 결핵 환자라는 것이었다

 그가 떠난 날

 처음으로 축축하고 무거운 이불을

 햇볕 쬐는 여인숙 옥상 빨랫줄에 걸었다

 내게는 결핵보다 더 무섭게 폐를 송송 뚫는

 외로움이라는 병이 있다는 것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어디에 가든 들키지 말고 잘 지내라고

 빌어주었다

(창작과 비평 154호, 2011 겨울호)

 

*날일 - 하루하루를 단위로 하여 치러 주는 품삯을 받고 하는 일.

*타짜 - 노름판에서, 남을 잘 속이는 재주를 가진 사람.




 




 

  소금과 나트륨의 차이 

(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3

 

 

 

- 송경동

 

 

 

충남 서산군 대산면 돗곳리

삼성종합화학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교통사고를 내고는

서산경찰서 대용감방에 들어갔을 때였다

다시 내 인생 좃돼부렀다고 자포자기

신입식을 거부하자 돌주먹들이 날라왔다

두 번을 끌려 나갔다 오자

전라도 깽깽이놈이 벌떼짓 한다고

간수들이 제일 센 방으로 집어넣어버렸다

죽어라는 소리였다

목이 졸렸던가

두 번 기절하고 깨어보니

온몸 근육들을 자근자근 밟아놔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잘못했다고 빌어라 했지만

침만 한번 뱉어주었다

피가 흥건한데 아무데도 터진 곳이 없었다

쓰라려보니 음경 끝이 찢어져 있었다

그 와중에도 궁금한 건

어떻게 밟아야 거기가 짓이겨 찢어지냐는 것이었다

참 별난 경험도 다 있다라는 생각

서산 조폭들이

땜통님 땜통님 이 새끼 데리고 나가요

이 새끼 미친놈이에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맞다는 생각

난 미쳤다는 생각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 2011년 황해문화 겨울호(통권73호)




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4

 

 

 

 

 

- 송경동

 

 

광양제철소 3기 공사장

배관공으로 쫒아 다니다

잠시 쉴 때였다

10년 된 고물 프레스토를 빼서

폼잡고 다닐 때였다

 

 

읍내 정다방에 미스 오가 왔다

메마른 시골 읍내에 촉촉한 기운이 돌고

볕이 갑자기 쨍쨍해질 정도로 예쁜 아이였다

뻔질나게 다방을 드나들고

아침저녁으로 커피를 시켜 먹었다

 

 

어느 비 오던 날

낙안읍성을 다녀오는 차 안에서

사랑고백을 했다

그날 저녁 담장을 넘어

내 품으로 한 마리 고양이처럼

달겨들던 그녀, 열 아홉이었다

 

 

처음으로 성을 배웠던 시간들

빚이 져서 떠나가던 그녀

다시 빈털터리가 되어

어느 발전소 공사현장으로 떠나야 했던 나

아름다웠던 시간만을 기억하자고

깨끗이 돌아섰던 우리

돌아보면 아직도 거기 서 있는 그녀

 

 

 

* 황해문화, 2011년 겨울호(통권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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