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숙 시 모음 7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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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숙 시 모음 70편

김용호 0 130
선미숙 시 모음 7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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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 선물

선미숙

아픔 끝자락에
가을바람이 실어 온 소식
다시 꿈을 꿔도 될까?
사랑하는 이와
마주보고 웃는 시간
말없이 바라만 봐도 알 듯한
서로 조금씩 닮은 상체기
눈물은, 시간은
바보 같은 나를 또 한 뼘 철들게 하고
세상에 눈뜨려면 아직도 먼 나는
당신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그저 마음이 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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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을 앞에서

선미숙

바쁘다는 핑계로 뒤돌아 볼 시간 없이
어느 새 오십을 훌쩍 넘기고 보니
그동안 흘린 눈물과
스쳐간 아픔들이 조금씩 쌓여
얼굴을 만들고 마음을 만들어
지금에 모습으로 남아,
찬바람이 스미는 인생의 가을 앞에 서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가야
한 사람이라도 곱게 간직해주는
빛깔로 남을까 생각해봅니다.
지나온 자리마다 새겨진 어설픔은
어떤 열매를 맺을지 가늠이 되니
원망보다는 부끄러움이 큽니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욕심보다는
한 잎이라도 임의 가슴에 고운 추억으로 남는
가을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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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을 비

선미숙

숙여진 정열을
바람이 차고 지나가면
낙엽은 어제의 빛깔을 간직 할 수 없음에
그 위에 가을비는 내려와 함께 눕잔다

늘 같은 빗소리이건만
하늘빛이 다른 까닭에
바람결이 다른 까닭에
이 밤 홀아비의 가슴은
얼마나 또 시릴련지
가을비는
야속히도 따스한 님의 품을
눈물 토록 생각게 한다

갈비야
외로운 이 내 마음마저도
가져가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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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간 큰 남자

선미숙

사랑을 달랬더니
눈물을 줍니다.

믿음을 달랬더니
배신을 줍니다.

웃음을 달랬더니
욕설만 줍니다.

그러면서
사랑 달랍니다.

자기는 사내랍니다.
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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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겁없는 세상

선미숙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적에
호박에다 줄그어도
호박이라 더니

삼 년에 한번씩 강산이
변한다는 요즘엔
호박에 줄그으면
수박이 된단다.

너무 겁없이 변해 가는
좋은 세상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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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고백

선미숙

우리가 살면 앞으로 얼마나 살겠어요.
이 나이만큼 살면서 깨달은 건
세상은 맘처럼 돌아가는 게 아니니
흘러가는 대로 사는 수밖에

남은 시간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오롯이 나를 위해
고운 추억 쌓는 것
그 시간 속에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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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고통

선미숙

장미를 손질하다가
가시에 찔렸다.

보이지 않는 아픔이
자꾸만 따끔거린다.

한참을 더듬어 빼내고 나니
후련하다, 말짱하다.

살면서 찾아오는 고통도
이렇게 빼낼 수 있다면

아무도 모르게,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렇게 말끔해질 수 있다면!

밤새 뒤척이다가 맞이하는 아침은
입 속까지 온통 가시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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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 해 겨울

선미숙

멀쩡하다가도 눈보라가 친다.
아주 매섭게 몰아친다.
니 아부지 생일 땐 언제나 그려
엄니는 당신의 평탄지 않은 삶을
늘 그렇게 날씨에 빗대어 푸념하셨다.

함께 산 세월 쉰 일곱 해를 채우고
무척 추울 거라는 겨울이 힘을 잃어버린 그 해
아버지는 눈보라 같은 삶을 놓으셨다.
그래도 착하게 사셨으니 가시는 날까지 도와주는 거라고
포근히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사람들은 한 마디씩 건넨다.

쉬는 날이면 저절로 발길이 가는 희망공원
아버지는 영혼의 동무들과 거기 계신다.
그곳은 좋으냐고, 나도 데려가라고,
사진 속 아버지를 보며 한참을 넋두리하고 나오는데
분홍빛 진달래 몇 송이 슬픔 달래듯 눈앞에 어린다.
3월초, 환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말없이 웃는 아버지 얼굴이다.

아직 때가 아닌데 하루가 다르게 잎이 열리는 꽃들!
성급하게 핀 목련은 찬 서리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까맣게 얼어버렸다.
빛깔 잃은 목련을 보고 벚 꽃은 속 모르게 웃고
사람들은 이른 꽃 잔치에 그저 즐겁다.
아버지를 가슴에 묻은 그 해 겨울은 봄처럼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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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선미숙


수 없이 많은 조각들을
이어 놓고
그만큼 많은 꿈들이 일어나
어제도 오늘도
좇고 있는,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아
허공 속에 떠다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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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들꽃

선미숙

들판에 이름 없는 꽃이라고
함부로 꺾지 마오.

그도
누구한테는
아름다운 사랑이고
하나뿐인 목숨이니

길가에 이름 모를 꽃이라고
생각 없이 밟지 마오.

그도
꽃을 피우기까지
모진 비바람 견뎌내며
눈물 흘린 세월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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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또 오늘

선미숙

몸도 마음도 지쳐
누가 툭 건드리면
쓰러져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너덜너덜해진 내 삶에
다시 찾은 새벽빛은 꺼져 가는 심장을 뛰게 하고
고운 햇살은 포근하게 감싸며
다시 힘을 내라 합니다.
이런 세상도 겪고
저런 세상도 겪으며
그게 사는 거라고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없으니
그 잣대에 흔들리지 말자고,
어제는 갔으니 잊어버리자고
내일은 어떤 빛깔의 해가 떠오를지 기다리며
하루를 만나고 그렇게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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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또 다른 풍경

선미숙

보릿고개 설움
그 설움
포만감으로 채우고

시골 촌놈 그 촌놈
도심 속의 주인이라

쌓이고 쌓인 육신의 기름 덩이
억지 육수로 뽑아 내며
도심 속의 낙원 위를 허무가
달린다

달리고 또 달린다

졸고 있는 저 별은
빈 수레의 욕망을
얼마나 헤아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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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만날 수 있을까

선미숙

또 연습이다.
내일은 어떤 인연을 만나고
어떻게 헤어질지
오늘도 그 아픔을 견디는 연습을 한다.

이제는 그만 하고 싶은 가슴앓이
그래서 닫아버린 마음
상처받는 게 무서워
움츠러드는 내 안의 세상

너무나 쉬어진 사랑
짧은 사랑
몸뚱이가 원하는 사랑
그 속에 내가 찾는 사랑은 없다.
사랑을 위한 사랑
참사랑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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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바보

선미숙

복을 복인 줄 모르면
평생
복 없이 사는 게지

내 흠은 돌아볼 줄 모르고
남 탓만 하니
꿈을 꾼들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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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밤새 내리는 눈

선미숙

아무도 모르게 별이 떨어진 양
그렇게 당신 곁에 가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잠들어 있는 문밖에 앉아
환한 미소로 나를 반길
아침을 기다립니다.

당신이 꿈꾸는 동안 나는 임의
기쁨을 위해 더 맑은 백색의 살을
찌웁니다.

당신이 꿈꾸는 동안 기도합니다.
내가 짐이 되지 않기를

내 소망은 오로지 하얄 줄밖에 모르는
나를 그저 하얗기 때문에
좋아 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이렇게 작은 소망을 안고
밤새도록 소리 없이 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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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별 나무

선미숙

하늘 밭 어느 자리에
내가 심어 둔 별씨 하나가

내가 꾸고 있는 꿈을 먹고
내가 주고 있는 눈빛 먹어

고뇌의 다리 건너
삶이 성숙 할 즈음

그대별이여

하늘 밭 한 이랑에
우뚝 선 나무 되어

행복한 그늘 되어 주길
나 꿈꾸나니

오늘도
고운 빛 꿈 하나 심어 주는 밤
별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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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빈자리

선미숙

상체기만 남은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까요

눈물도 메마르고
아픔도 무뎌졌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원망, 미움
이제 비우고 나면

그 자리에
웃음이 피어날까요?

그 곳이
빛으로 채워질까요?

고운 꽃 피울 작은 씨앗하나
조심스럽게 심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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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사랑 끝

선미숙

너도 나만큼 아프니
나도 너만큼 아프다.

뜨겁던 심장이 식어가고
눈동자는 빛을 잃었다.

어제까지만
기억에서 지워지기를

오늘
나는 지금 막 태어난 아기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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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사부곡

선미숙

어제도, 오늘도 해는 떠오릅니다.
이런 아침이 얼마나 보태져야 무뎌 질까요.

할 만큼 했으니
나는 울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 쳤는데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발길 가는 곳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아버지는 거기에 있습니다.

차라리, 추억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덜 힘들까요.

함께 한 시간보다 그러지 못한 날이
더욱 많아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줘서 고맙다는
따뜻한 말 한 마디 해드리지 못해
아프고 또 아픕니다.

이제 와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무슨 소용일까요.
그저 못난 딸입니다.

다음 생이 있다면 또 다시 아버지와 딸로 만나
세상 사람이 부러워하는 멋진 부녀로 살아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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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선미숙

내가 배부를 때는
네가 얼마나 배가 고픈지 알 수 없고

내가 건강할 때는
네가 얼마나 아픈지 알 수 없고

내가 행복할 때는
네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없어

누구나
네가 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맛

그 속에서
네가, 내가 되어도 좋을 하루

우리는 그 하루를 기다리며
비바람을 견디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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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책방에서

선미숙

무엇인가 잃어버린 듯한 가슴을 안고
책방에 문을 당긴다.
먼지가 쌓일 만한 작은 틈새도 없이
빽빽이 자리를 차지한 제목들 모두가
나의 허기진 마음을 유혹한다.
소설, 수필, 시집 등 아니 철학을 논한
책도 좋으리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내 가난한 마음을
잘도 헤아려 이렇게 넘치는 희생을
감당했으리
오늘도 한 권의 책으로 마음을 달래며
한마디의 양식을 줍기 위해
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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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세 월 1

선미숙

가다가다 힘에 겨워 쉬어 가도
되련마는 야속한 당신은
그것을 못합니다.

가다가다 목이 말라 물 한 모금 간절
하련마는 독한 당신은 그것을 참습니다.

가다가다 길을 잃어 망설임도 잊으련마는
영리한 당신은 그것을 안 합니다.

가다가다 동무 만나 곡주 한 잔 하련마는
매정한 당신은 그것을 외면합니다.

가다가다 그리움이 있어 되돌아 볼 수도
있으련마는 차가운 당신은
그것을 잊었습니다.

가다가다 둘 뿌리에 치어 넘어지기도
하련마는 완벽한 당신은 그것을 봅니다.

가다가다 세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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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세월 2

선미숙


빨리 가라 철없을 땐
그리도 더디 가더니

천천히 가라 철들어선
왜 그리 잘도 가는지

이제

인심반 미련반 쏟고 나니
남은 건 속절없는 한숨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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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

선미숙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
시인은 시를 쓰지 않는다.

하루하루 삶이
순간 순간 몸짓이
아름다운 단어고
깊은 문장이다.

그에 눈빛이
그에 입술이
꽃이고 노래다.

시인은 오늘도 그렇게
또 한편의 시를
간절한 마음으로
써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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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

선미숙

어디에도 풀지 못한 마음을
쌓인 마음을
구름 되게 하여 눈으로 나리면
너른 땅 품에 안겨
모두 사라질 텐데
모두 비워질 텐데

누구한테 주지 못한 마음을
아낀 마음을
구름 되게 하여 봄비로 내리면
마른 숨결마다 촉촉하게 스며
모두 파란빛일 텐데
모두 열매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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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악몽

선미숙

그 곳에 가면 꽃길인 줄 알았다.
그와 함께라면 웃음이겠지 믿었다.
고운 길은 보이지 않고
가면 갈수록 어두운 터널이다.

상체기가 나고
피눈물을 쏟고
가슴에 시커먼 멍이 들고

너무나 멀리 돌아왔다.
길이 아닌 걸 알았을 때
빨리 돌아서야 했다.
너와 나
이제 꿈에서 깨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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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안개 낀 날

선미숙

태풍이 지나고, 간밤에 밤하늘은
별이 초롱초롱 빛났다.
동이 트려면 한 시간 반쯤 남았는데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가야산으로 가려는데 안개가 앞을 가린다.
운전대를 잡고 잠깐 망설이다가
부춘 산으로 차를 돌렸다.
이른 시간인데 운동하는 사람이 많다.
사진기 가방을 등에 메고
삼각대를 들고 한 칸 한 칸 층계를 오른다.
안개가 숲을 밝힌다.
전망대에 오르는 길은 벌써 안개비에 젖어
물방울이 떨어진다.
올라갈수록 바람이 세다.
꼭대기에 오르니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무의자도 축축해 앉을 수가 없다.
천천히 내려오면서 가로등과 안개가 만들어 준
빛줄기를 두 컷 찍고 아쉬움을 달래본다.
지금 내 삶도 이렇게 안개 속이다.
날이 밝으면 안개도 거치겠지.
내 삶은 언제쯤 환하게 밝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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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암자

선미숙

꿈에 보인
이름 석자
망설임 끝에
찾아 나서니
작은 마을을 지나
굽이굽이 산골
맑은 공기가
나를 이끌고
외길 끝 저 만치에
귀에 익은 풍랑 소리
나를 부르네
무거운 마음 씻어 볼까
향사르고
어설픈 삼배하니
꿈에 본 탁발승은
어디 가고 속세의
여인이 산사의
안주인이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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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어머니

선미숙

열 여덟 고운 빛
고운 내음 어디 가고
세월을 징검다리 해
어느 새 반백
오매불망 기나긴 밤
여섯 손가락 채워 가며
한으로 쌓인 미움은
노을 빛 등진 굽은 허리 위에
연민으로 젖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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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이별 뒤에

선미숙

그래 아파라
많이 아파라
아픈 만큼 단단해진다니
좀 더 아파라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고통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어리석음
돌이킬 수 없는 선택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죽음일지
눈물일지
웃음일지
알 수 없는 이 끝

밤이, 밤이 아니고
낮이, 낮이 아니다.
하루하루 심장은 죽어가고
영혼은 메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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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이별 후에 1

선미숙

그대
어느 날 갑자기 날 두고
말없이 떠나서
다시는 내 곁에
올 수 없을 지라도
나 그대 때문에
가슴 저려야 하는
그런 아픈 마음 가지지 않게
그대 날 위해 말 해주오
잠시 머무는 바람이라고

그대
지난 시절이 잊히지 않거든
짧은 기억 더듬어 추억의 노래
한편 지어 가로수 가지 끝에
실어 보내 주오
나 그대 때문에 슬픈 마음
노래 불러 위로 삼으리
그대는 바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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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이별 후에 2

선미숙

나 아무런 말없이
그대 곁을 떠나
다시 올 수 없을지라도
그대여
나로 인해 슬퍼지거나
눈물 흘리지 말아 다오.
우리 서로 만났던 짧은 인연
잠시 너무도 선명한 꿈을
꾸었던 것이라 생각해 주오.

나 그대와의 순간이
그리워 눈물나거든 아름다운 순간
그림으로 그려 그대와 노닐던
바닷가에 띄우나니 꿈속일지라도
그대여 한때 아름다운 사랑이
있었음을 가슴속에 간직해 주오.
☆★☆★☆★☆★☆★☆★☆★☆★☆★☆★☆★☆★
《49》

인연

선미숙

흐르다 흐르다가 머문 곳도 아니오
떠돌다 떠돌다가 지쳐서도 아니라오
우리 서로 만난 곳 하나뿐인 오작교
우리 서로 만난 것 전생의 업이라오
더 쏟아야 할 눈물이 남아 있어
씨뿌려 곱게 키워 반이라도 갚으라고
모자라는 반쪽 만나 하나 되게 채우라고
다음 생에 업 되어 다시 살지 말자고
그렇게 우리는 만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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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잠아!

선미숙

어디로 갔을까.
가까워지지 못하는 까닭은?
가라한 적도 없는데
오지 말라 막지도 않았는데
너무나 야속하게
잠은 또 먼 곳에서 헤맨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갈 수 없는
깊은 그 꿈나라는 오늘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벌을 주려거든
차라리 다른 벌을 주지
전생에 아무래도 잠 때문에 진 빚이 많은 게다.
책을 펼쳐들어도 약이 되지 않는다.
글을 쓰는 건 더욱 독이다.
밤이 낮인 양 개구리소리만 어둠 속에 신이 났다.
나는 언제쯤 잠과 한 몸이 될 수 있을지?
이젠 지쳐서 내가 잠을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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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죗값

선미숙

전생의 업을 다 씻지 못해
돈 번 사람 돈으로 갚고
힘센 사람 힘으로 갚아라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으니
눈물로나 갚아야지

☆★☆★☆★☆★☆★☆★☆★☆★☆★☆★☆★☆★
《54》

책을 읽다가

선미숙

마음 밖에 마음이 있으니
어찌할까나
내 맘을 마음대로 못하니
마음이 짐이어라.
☆★☆★☆★☆★☆★☆★☆★☆★☆★☆★☆★☆★
《55》

그도 그럴 것이

선미숙

네가 나를 알면 얼마나 알 것이며
내가 나를 알면 또 얼마나 알 것인가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너도 너를 잘 모르는데

눈에 들어오는 게 전부가 아닌 것이 더 많고
귀에 들리는 게 참이 아닌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는

한발 짝 뒤로 물러서 너를 보고
한 걸음 멈춰서 내 마음을 본다.

세상 눈으로 나를 봐도 바보요
내가나를 생각해도 참말 바보라

방황하는 나그네의 떠도는 마음은
순수함을 잃어버린 그 때부터이니

사랑해서 미안하고
마음 쏟아 부어 미안한

맑은 물 고일 때까지 마음 모두 비우고
처음 내 모습 찾아 떠나가리.
☆★☆★☆★☆★☆★☆★☆★☆★☆★☆★☆★☆★
새벽연서

선미숙

설픈 새벽에 눈이 떠지면
가장 먼저 스치는 얼굴 있습니다.

만질 수는 없지만
가질 수는 없지만
그냥 뭔가 설레는 느낌!

가랑비에 옷 젖 듯
알게 모르게 젖어든 마음
사랑은 그렇게 쌓이나 봅니다.

어느 날 당신이 내 곁을 떠나면
사랑할 때 앓는 가슴보다
아주 많이 더 아프겠지요.

언젠가 그날이 온데도
오늘은 지금 내 맘만 볼래요.
온 세상에 당신과 나 둘만 있는 듯!
☆★☆★☆★☆★☆★☆★☆★☆★☆★☆★☆★☆★
《59》
언제까지나

선미숙

하늘이 흐려 빛이 없으면
나를 바라보는
임의 마음을 빛 삼아 살면 되지요.

짙은 안개 속에 길이 보이지 않으면
나를 부르는
임의 목소리 따라 가면 되지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만나면
나를 붙잡고 있는
임의 손끝 놓지 않으면 되지요.

거친 물보라가 앞을 막으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임의 믿음 생각하면 되지요.
☆★☆★☆★☆★☆★☆★☆★☆★☆★☆★☆★☆★
《61》
작은 행복

선미숙


다정한 목소리 자주 들으니
이렇게 좋네요.

눈빛 바라보며 얘기하니
참 좋네요.

함께 숨 쉴 수 있어
더 없이 좋네요.

나를 지켜주는 사랑이 어딘가 있다니
이보다 좋을 순 없네요.

고맙습니다.
사랑아!
☆★☆★☆★☆★☆★☆★☆★☆★☆★☆★☆★☆★
《62》

천수만 새벽편지

선미숙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달려갑니다.
오늘은 또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4,000일이 넘도록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곳!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지 않은 게 있다면
떠오르는 해를 어제와 다른 감동으로 받아들이는
조금은 차 오른 내 맘과
깃털 색이 어미와 닮아 가는 큰고니 새끼들!
머지않아 남쪽에서 순한 바람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그 바람에 밀려 고향으로 돌아갈 겨울 철새들.

오고 가는 게 어디 철새뿐이리
이 마음에 잠시 머물던 그 맘도
그 마음에 잠시 머물던 이맘도
또 다른 아픔과 기쁨 되어 오고 가는 것을!
내일을 알 수 없으니 약속은 못해요.
나는 날마다 오늘이 끝입니다.
☆★☆★☆★☆★☆★☆★☆★☆★☆★☆★☆★☆★
《63》

천수만에서

선미숙

너른 들판은
따스하게 나를 안아준 임의 가슴이고

조용하게 자리한 도비산은
말없이 지켜봐 주는 임의 눈빛이고

간월호수는
아픔을 품어준 임의 마음이고

해미천은
내 삶을 풍성하게 해준 임의 사랑이여라.
☆★☆★☆★☆★☆★☆★☆★☆★☆★☆★☆★☆★
《64》

고백

선미숙

어떤 이는 말하지요
나이 오십이 넘으면 닳고 닳아
만만치 않다고!

부대끼며 살아온 세월이 반백을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한데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게 많은 건
좀 더 겪어야할 아픔이 남았다는 뜻일까요?

가슴에 품은 게
세상을 보는 원망보다는
모자라는 나를 탓할 수 있는 건
나이가 주는 가르침인가 봅니다.

죽을 만큼 아플 때는
돈도 명예도 사랑도
모두 부질없다 싶다가도
문득
이대로 죽으면 많이 억울해서
한 번쯤 목숨과 바꿔도 좋을 사랑을 꿈꾸는
그런 바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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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첫눈 나리는 날

선미숙

듣고 있는 듯
보고 있는 듯
나려옵니다.
쓸쓸한 내 품으로
하얀 웃음 되어 나립니다.

듣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오늘도 하늘을 봅니다.

오매불망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이송이 그리움으로
하얗게 나립니다.

☆★☆★☆★☆★☆★☆★☆★☆★☆★☆★☆★☆★
《66》

청소를 하며

선미숙

속으로 앓던
인연 한 자락
툴툴
털어 버리니
이렇게 편한 것을
이렇게 가벼운 것을

켜켜이 쌓였던
미움 한 자락
싹싹
닦아내고 나니
이렇게 환한 것을
이렇게 개운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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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갱년기

선미숙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들쭉날쭉 한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나는 지금까지 뭘 하며 살아 왔나
이 나이 먹도록 이뤄놓은 건 뭔가
허망하다.
사랑도 명예도 다 부질없다.
그냥 팍 죽어버릴까

하다가도

그래, 난 할 수 있어
내가 누군데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
나보다 못한 사람도 많은데 뭐!
괜찮아 누구나 겪는 일이야

공평한 선물을 받았는데
마음이 울다가 웃다가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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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하얀 어둠

선미숙

짙은 안개 속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기다려도 하늘은 보이지 않고 세상이 온통 하얗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하나?
이 하얀 어둠은 언제쯤 걷히려나?
더듬고 더듬어 걸어 온 길
이 길이 맞길 바라면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다.
마음의 눈을 뜨고 가다보면
언젠가는 보이겠지
멀지 않은 날에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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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바램

선미숙

스치는 인연이든
숙명의 필연이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우리가 만났다는 거
그 하나면 되지요.
몇 번을 만났는지 손가락을 꼽지 않아도
그곳과 이곳에
해가 지고 달이 뜬 게 몇 번인가요.
눈을 자주 마주쳐야 정이 드는 사람도 있고
목소리로 애틋함이 쌓이는 이들도 있어,
몇 줄 마음 적어 보내면
이 마음이 그 마음인 듯
알게 모르게 쌓이는 사랑도 있지요.
떨어져 있는 거리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마음이 서로 닿으면 되는 것을!
두 눈 감을 때 가장 고맙게 생각나는 사람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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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우리 모두

선미숙

사랑 한 다발
웃음 두 다발
믿음 세 다발

용서 한 사발
이해 두 사발
칭찬 세 사발

존경 한 수레
배려 두 수레
격려 세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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